저자: 홍성후 (한국미술사연구소 연구원)

I. 억압과 망각에서 형성된 복합적 예술 주체

식민과 해방, 자본과 제국, 전쟁과 분단이라는 계급적, 이념적 격동을 가장 집약된 형태로 체현한 미술가를 들자면, 이쾌대(李快大)만큼 그 역사적 소명을 짊어진 이는 드물 것이다. 그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체제라는 구조적 폭력 속에서 사유했고 해방 이후 더욱 첨예해진 계급 모순과 이데올로기 분열 속에서 실존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해방은 단지 억눌린 민족의 해방이라는 전환기가 아니라 새로운 지배담론의 전장이었다. 좌익과 우익,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또는 민족주의라는 이항대립은 민중 개개인에게 복수의 삶을 허락하지 않고 단 하나의 선택만을 강요했다. 이 선택은 결코 자유의지라고 볼 수 없었으며, 진영에 치우치지 않은 채 경계에 머문 정치적 중도는 한국전쟁 와중에 철저히 파괴되고 말았다. 이쾌대는 전쟁의 현장에서 포로가 되어 1953년의 포로교환협정에서 북을 택했다. 결국 이쾌대 또한 하나의 진영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로서 분단체제의 잉여로 밀려났고, 미술가로서의 주체성은 냉전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프레임에 의해 끝내 억압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