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강상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지정학적으로 중화(中華)질서/동아시아지역은 중국 중심의 문명권이자 한자 문명권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그중 한반도는 중국이라는 대륙세력과 일본이라는 해양세력이 만나는 길목에 위치한다. 그리고 19세기 후반부터는 여기에 러시아가 대륙세력에, 미국과 유럽 열강이 해양세력에 합류해 들어왔다. 그래서 근현대 한반도는 지구상의 가장 강력한 열강들이 접하고 있는―세계적으로 유례 (類例)를 찾기 어려운―지정학적 공간에 놓이게 된다. 일찍이 황준헌이 『조선책 략』(1880)에서 “조선이라는 땅은 아시아의 요충을 차지하고 있어 형세가 반드시 다투기 마련이며, 조선이 위태로우면 중국과 일본의 형세도 날로 위급해질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강토를 공략하려 할진대, 반드시 조선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라고 설파한 것은 한반도의 이러한 독특한 지정학적 위상을 지적한 유명한 사례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지정학적인 ‘구조’적 요인은 중화질서/동아시아지역에 이른바 ‘전환기’적 상황이 도래하는 시기마다 한반도의 ‘역사’를 백척간두의 위기로 몰 아가곤 했다. 예컨대 16세기 말 일본의 전국(戰國)시대가 마무리되어가던 격변기적 시점에서 한반도는 두 차례의 왜란―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치러야 했고, 17세기 중엽 중화질서의 패권이 한족(漢族)에서 만주족으로 이동하게 되는 이른바 ‘명청교체’의 시점에서 두 차례의 호란―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 휘말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