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에 포함된 “재난”은 날씨 등 자연현상의 변화 또는 인위적인 사고로 인한 인명이나 재산의 피해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재난 가운데 자연현상과 관련된 천재지변을 특히 “재해”라고 부른다. 사람의 실수 또는 부주 의나 고의로 일어난 사고도 재난으로 보며 이때 인간의 책임을 묻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말은 “인재”다. 그러나 올해 여름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의 북반구를 강타한 폭염은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라고 간주되는데, 이때 기후변화는 인간이 발생시킨 온실가스가 주된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를 자연재난인 “재해”로 불러야 할지 아니면 인공재난인 “인재”로 불러야 할지 애매하다. 어쩌면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이제 지구 위의 어떤 재난을 가리켜 자연재난이냐 인공재난이냐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곤란해졌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재난은 일본의 지진이다. 그러나 지진 자체가 아니라 대지진에 대비하는 일본 방재과학의 집합실험을 다루며, 이를 인류학적 민족지 방법 으로 연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 책의 특색은 일반적인 인류학 연구와는 달리 행위자-연결망이론(ANT: Actor-Network Theory)에 따라 이런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ANT는 1980년대 초에 과학과 기술에 대한 학제적 연구분야인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의 한 접근으로서 출현하였고, 1990년대에는 근대성에 관한 인류학 연구로 확대되어 오늘날 이른바 인류학의 ‘존재론적 전환’을 촉진한 흐름의 하나가 되었다. 따라서 일본 방재과학을 인류학적으로 연구하는 이 책이 ANT를 주된 이론적 준거로 택한 것은 새롭지만 이상한 시도 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인류학이 아닌 과학기술학의 관점에서 볼 때는 국내에서 ANT 접근에 따라 과학실험에 대한 본격적인 민족지 연구를 수행한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매우 참신하고 선구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서평을 쓰는 필자는 인류학자가 아닌 사회학자로서 과학기술학 분야에 오래 관여해왔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반가운 ANT의 사례연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