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고일홍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교역항은 “땅과 바다의 경계지점에서 서로 다른 문화와 서로 다른 환경이 만나는 교류의 중심지이며 물자, 노동력, 자본의 출입지점으로서뿐만 아니라, 문 화, 지식, 정보가 수용되고 전달되는 망의 중심지(nodal center)의 역할을 가진다. 이와 같은 교역항의 본질적 기능으로 문화가 뒤섞이고 새로운 혼종의 문화 가 발생할 수 있는 조건과 공간이 마련되기도 한다”(Tan, 2007: 852). 교역항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이 사천 늑도 유적이다. 기원 전후 무렵까지 약 200여 년 동안 동아시아의 중요한 국제 교역항으로 기능했던 이곳에는 다양한 지역의 물자와 주민이 모여들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고, 종종 서로 다른 문화의 혼종이 일어기도 했다. 전자는 다양한 매장풍습이 공존하는 늑도의 무덤 구역에서, 그리고 후자는 ‘구들’이라는 이질적인 난방 시설이 설치된 이 지역의 전통적인 원형 주거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늑도에는 이질적 문화·지식·정보의 수용·전달·융합이 일어났던 또 하나의 중요한 현장이 있었는데, 수공업 생산 구역이 바로 그곳이다.

늑도에서는 철기, 토기, 골각기, 직물의 생산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직·간접적 증거가 확인되어, 이 고대 교역항에 상당한 규모의 수공업 공방지 가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늑도에서 이루어졌던 수공업 생산의 직접적 증거는 늑도가 항구였음을 보여주는 직접적 증거에 비해 훨씬 더 풍부한 편이지만, 전자에 대한 관심은 후자에 비하면 미미하다. 그런데 늑도의 ‘국제 교역항’ 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이루어졌던 수공업 생산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 고고학의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교역항에 조성되었던 공방지의 성격이 그 교역항의 성격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