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전제성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쇼핑 없이 인생은 완성되지 않는다.” 싱가포르의 저명한 사회학자 추아뱅후 앗(Chua Beng Huat)이 고촉통 전 총리의 발언을 따서 자신의 책 제목으로 사용한 말이다. 이 문장처럼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무언가를 소비한다. 그러므로 소비는 인생의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핵심적인 요소이다. 현대국가가 국민의 소비를 여하히 보장해줄 때 그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뜻도 담고 있다. 소비에 브레이크가 걸리면 사회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국가권력도 땅에 떨어질 수 있다. 제품이 희소하므로 무언가 만들어내면 소비가 잇따른다는 생산 중심적 시각은 대공황과 함께 파국을 맞이했다. 오히려 거꾸로 내수의 증진이 생산을 가속해 경제 위기의 출로를 여는 현실을 경험하곤 한다. 국제관계에서도 소비는 힘(power)이다. 자국 시장의 구매력을 힘의 자원으로 삼아 타국에 압력을 행사하거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의 개인적, 경제적, 국가적, 국제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소비의 세계는 더 중요한 무엇에 부속되는 부차적인 대상으로서 특정 학문 분과에 국한된 연 구 주제로 치부되어 왔던 것 같다. 동남아시아 지역을 사례로 삼는 한국의 학술 연구에서도 소비 영역에 관한 연구 성과는 희소해 보이고, 드물게 산출되는 소 비 연구 성과마저도 한국 관련 소비, 특히 한류 연구가 주류를 차지한다. 한국의 음악, 영화, 드라마, 음식, 공산품에 관련된 소비 행태와 선호 반응을 분석하는 연구들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