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폭넓은 주제와 소재의 의료인류학 분야 연구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사회학의 행위이론적 관점에서 의료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서평자의 입장에서, 학기 말 망중한 가운데 흥미롭게 정독할 수 있었던 값진 책이다. 이 수많은 흥미로운 주제들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없지 않지만, 근대성 혹은 근대라는 주제 아니면 어떤 주제로 이 폭넓은 사유를 담을 수 있을까 수긍하기에 이른다. 많은 이견이 있는 근대성 혹은 근대의 의미를 미리 정의하지 않고 구체적 맥락에서 그것이 어떻게 경험되고 있는지를 하나씩 살펴보고자 하는 이 책의 기획에도 수긍하기로 한다. 근대의 구체적 모습들을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고, 남겨진 빈자리가 무엇인지를 그 가운데에서 무리 없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근대에 대한 정의가 전혀 없지는 않고 최소한의 정의에서 출발한다. 그 최소주의가 반갑고 그 내용 역시 합리 혹은 합리성을 최소한의 정의 위에 놓 으려고 했던 막스 베버의 기획을 닮은 듯하여 반갑다(Kalberg, 1980). 제1장은 근 대를 인류가 좇는 이상적 발전의 모습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굳이 포스트 근대를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 그 근대를 향해 진행되어온 과정을 근대화로 정의한다. 그런데 이 책은 더 나가 근대화의 ‘성공과 번영’을 얘기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고 그에 묻혀 있는 ‘희생과 그림자’를 얘기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제한다. 그래서 제1장 말미에서 성공과 번영에 가려져 있는 희생과 그림자를 드러내겠다고 선언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책에서 근대화의 긍정적 모습보다는 부정적 모습을 보고하는 연구들을 읽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서평자는 앞서 제시한 최소한의 정의에 기반해 긍정도 부정도 아닌 둘 모두로서의 근대에 대한 연구 기획은 애초 왜 이뤄지지 않았나 궁금하였다. 또 근대의 성공·번영 대 실 패·희생의 구도 대신 근대성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기록이라는 연구기획은 왜 이뤄지지 못했는지 궁금하였다. 이와 같은 궁금증에서 이하 6개장으로 구성된 독립적 연구들을 각각 차례로 논평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