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성동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Islam Karimov) 전 대통령이 2016년 9월 2일에 사망하면서 그의 25년 독재 정치가 막을 내렸다. 그해 8월 28일에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인터넷 신문 『페르가나(Fergana)』에서 그의 죽음을 처음으로 보도한 후 해외 주요 언론사들도 그의 사망설을 연달아서 제기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는 그가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반복해서 발표만 할 뿐 그의 사망을 계속해서 부인했다. 그러나 9월 2일에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는 국영 방송을 통해 카리모프 전 대통령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의 사망 이후 세계는 우즈베키스탄의 포스트 카리모프 시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카리모프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사망했 기 때문에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인지에 관한 다양한 분석 기사들이 나왔 다. 대내외적으로 거론되었던 우즈베키스탄의 차기 대권 후보들은 2003년부터 13년 동안 총리로 재직하고 있었던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yev), 2005년부터 11년 동안 재무 담당 수석 부총리로 재직하고 있었던 루스탐 아지모프(Rustam Azimov), 그리고 1995년부터 21년 동안 민족 안전국(NSS: National Security Service) 의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루스탐 이노야토프(Rustam Inoyatov) 세 사람이었다. 이들은 모두 카리모프 정권의 실세들이었으며 그의 정책을 충실히 수행한 자들이었다. 카리모프 정권하에서 아지모프는 업무의 특성상 대내외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으며, 이노야토프는 우즈베키스탄 최고의 권력 기관이라고 누구나 인정하는 민족 안전국 의장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이전부터 포스트 카리모프로 평가받아 왔었다. 반면에 미르지요예프는 총리였기 때문에 권력상 서열은 높았지만 위 두 사람에 비해서 인지도와 권력 면에서 평판도가 낮았다. 그러나 아지모프와 이노야토프가 타슈켄트(Tashkent) 파벌인 반면에 미르지요예프는 카리모프와 같은 사마르칸트(Samarkand) 파벌이라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차기 대권 주자로 지속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도 미르지요예프에게 반전을 제공하기는 힘들었다. 그 이유는 1999년 2월 16일에 발생한 타슈켄트 폭탄 테러 때문이었다. 이 테러는 카리모프를 겨냥한 것이었는데, 주동자들이 사마르칸트 파벌 출신이라고 알려지면서 카리모프는 타슈켄트 파벌과 연합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으며, 이후 타슈켄트 파벌 출신들 이 사마르칸트 파벌 출신들보다 권력 측면에서 더 큰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