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역사에 대한 논의로 들어가면 종종 당혹감을 느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많은 태국인들이 13세기부터 시작된다는 자신들의 역사 기원에 대해 큰 의문을 갖지 않고 수긍하기 때문이다. 태국 역사와 관련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 중 하나인 와이어트(Wyatt)의 저서 Thailand: A Short History(태국: 짧은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태국의 역사―적어도 태국인들이 인정하는 자신들의 역사―는 다른 주변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태국인은 초·중·고 시절을 거치면서 수코타이 왕국을 타이족이 세운 최초의 왕국이라고 배운다. 타이족의 기원에 관한 학설들은 아직도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채 표류하고 있다. 국가나 민족의 기원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에서는 기원전 233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단군이라는 민족의 시조가 탄생한 과정과 배경을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널리 가르친 다. 이런 한국인들에게 태국 사람들의 역사관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정체성은 또 어떠한가.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 종교, 언어, 문화가 혼 재해 있는 동남아시아 지역이지만, 상좌부불교의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대륙부 동남아시아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나라별로 가려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 대륙부 동남아시아 나라 사람들은 비슷한 시기에 쏭끄란 축제를 즐기고 불교 명절을 지내며, 비슷한 주거 양식, 비슷한 복식과 비슷한 식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종교에서 기원한 세계관의 유사성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접경 지역에서는 언어까지도 비슷한 지역이 많아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구별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자연히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태국의 문화라는 것은 정말 태국의 것인가. 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태국적인 것과 태국적이지 않은 것의 경계는 무엇인가. 그러한 경계가 있기는 한 걸까. 만 약 있다면, 그 경계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며,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