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99년 9월부터 2007년 2월에 걸쳐 고등연구실용학교(EPHE: 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의 역사문헌학부와 파리 7대학의 동아시아언어문명학부(Langues et Civilisations d’Asie Orientale)에서 프랑스의 아시아 연구를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EPHE의 도서관, 국립동양어대학(INALCO: Institut National des Langues et Civilisations Orientales)의 도서관, 프랑스 극동 연구원(École Française d’Extrême-Orient, 이하 ‘EFEO’로 약함)의 도서관, 국립도서관(BN: Bibliothèque Nationales), 각종 아카이브센터, 꼴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와 아시아 학회(Société Asiatique)의 도서관 등지에는 수많은 아시아 관련 자료들이 축적되어 있다. 그리고 꼴레주 드 프랑스의 동양학 도서관과 정원은 국립고문서학교(École Nationale des Chartes) 출신의 ‘샤르티스트(chartistes)’들이 다양한 나라에서 온 아시아학 연구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프랑스와 ‘인접한 동양(Proche-Orient)’이나 ‘극동(Extrême-Orient)’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면 과연 프랑스의 아시아 연구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발전하게 된 것일까? 이 글의 목적은 프랑스가 바라보며 연구하던 아시아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기(Indochine Française, 1887~1954) EFEO의 성립 및 활동과 관련하여 조망해보는 데에 있다. EFEO는 1898년에 창설되어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으로 베트남이 독립하는 1954년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인도차이나와 인근의 아시아 지역을 연구하던 프랑스 제국주의의 연구 기관이었다. EFEO에 대한 최초의 연구는 설립 20주년을 기념하는 형태로 EFEO의 설립 배경과 인도차이나 총독 두메르(Paul Doumer)의 역할, 초기 연구의 성격과 연구자들의 활동, 새롭게 현지에서 조성된 도서관과 박물관 등을 소개했다(EFEO, 1921). 그리고 이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존립이 현지의 독립운동으로 위기를 맞고 있었을 때, EFEO의 50주년은‘축제의 장’이었을 뿐이었고, 75주년은 EFEO의 아시아 연구와 방법론을 소개하는 계기였다(Pacific Affairs, 1952; Clémentin-Ojha et Manguin, 2001: 8). 이처럼 세 차례에 걸쳐 EFEO 관련 소개와 기념행사가 있었지만, 주로 20~25년 동안의 단계별 성과를 모으는 데 그쳤고, 2001년이 되어서야 100년간의 역사를 정리하려는 작업이 미약하나마 시도되었다(Clémentin-Ojha et Manguin, 2001). 그런데 이러한EFEO 내부의 제한적인 자체 연구를 비판하며 ‘식민학(science coloniale)’의 관점에서 EFEO의 사회사와 정치사를 규명하려는 노력도 나타나게 되었다(Singaravélou, 1999). 국내에서는 프랑스의 한국 문학 연구자와 프랑스사 연구자가 EFEO의 발전 과정에 대해 접근했지만, 이 두 연구는 EFEO의 아시아 연구를 중국, 일본, 한국 등을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내용도 적지 않다(Bouchez, 1995; 권윤경, 2018).
그래서 필자는 우선 장기적인 관점에서 프랑스의 다양한 아시아 연구 기관들이 등장하는 배경과 목적이 EFEO의 설립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과정을 파악하고자 한다. 1898년부터 등장한 EFEO는 1954년까지 기존의 아시아 연구 기관과 어떻게 연계되면서 자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의 대표적인 아시아 연구 기관 중의 하나로 점차 자리를 잡게 된 것일까? 그리고 EFEO가 제국주의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식민 정권과 ‘공모’했다고 평가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 기관의 활동과 연구 성과에 드러나는 다양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마지막으로 현재 아시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연구자들과 연구 기관은 당시 EFEO의 연구 인프라와 학문적 성과 등을 통해 어떠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