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기 샌프란시스코 평화회의를 거쳐 형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미일의 삼각관계는 한미와 미일 사이의 동맹과 “유사동맹”인 한일관계(차빅터, 2004)의 세 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근대주권국가 사이의 일반적인 관계와는 달리 ‘위계성’과 ‘지위’에 대한 이해로써 이에 접근할 수 있다(신욱희, 2020: 60). 이 삼각은 냉전기 자유 진영을 대표하던 미국과 동아시아 냉전의 주체였던 일본,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평화회의에 참여하지 못한 한국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신욱희, 2020: 60), 그 위계성이 비교적 명확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미일 삼각관계의 이러한 위계성에 대하여 어떤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을까? 본 연구는 이러한 의문점에서 출발하여, 냉전 초중반기 한국의 대통령이었던 이승만과 박정희가 각각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그에 대하여 비교해 보고자 하였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일종의 틀로서, 본고는 두 대통령의 ‘대일 인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한미일 삼각의 위계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추적하는 데있어 ‘대일 인식’을 틀로 선택한 것은, 두 사람 모두 ‘일본처럼 되고 싶어 했던’까닭이다. 여기서 ‘일본처럼 되고 싶어 했던’이라는 표현은 두 대통령이 일본을비교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미국의 아시아 동맹 파트너라는 지위를 한국이 차지하게 하고 싶어 했다는 점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의 성장을 바라보며 한국을 발전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각각 한국이 일본처럼 될 수 있기를 바랐다(박태균, 2010: 117-119; 이준식, 2009: 245-247). 물론 국익이 가장 중요한 고려대상이 되는 외교정책에 있어 이승만이일본과의 협력을 원천 거부한 것도, 박정희가 일본에 대해 아무 경계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대체로 전자의 대일 인식은 부정적이었고 후자의 그것은 상대적으로 좀 더 긍정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2 이렇듯 다른 대일인식이 위계적인 한미일 관계에 대한 두 사람의 관점과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론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