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국가에 기반한 국가주도적 산업화 전략으로 고도성장을 달성하였던 한국의 발전모델은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모델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신자유주의 모델은 영미형의 고전적 신자유주의와는 다르게 과거 발전국가의 관성이 강하게 잔존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구적·선택적으로 활용하는 발전주의적 신자유주의(developmental neoliberalism)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Hill et al., 2012; Carroll, 2017; 윤상우, 2018). 한국은 발전주의적 신자유주의를 통해 이전만큼의 고도성장은 아니지만 2000년대 이후에도 비교적 꾸준하고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해외 투자자본의 지속적 유입, 국제무역 및 글로벌 가치사슬(GVC)에의 적극적 참여가 보장되고, 발전주의적 정책(환율, 금리 등)으로 수출대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무역흑자를 창출하는 전략이 나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내외적인 경제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먼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경기침체 국면에 진입하여 2010년대 내내 성장세가 둔화되고 경제의 역동성이 하락하고 있으며, 탈세계화(deglobalization) 또는 세계화의 둔화(slowbalization)라고 지칭될 수 있는 경향성(세계무역, FDI, 글로벌 가치사슬의 축소)은 점차 강화되고 있다(James, 2018; The Economist, 2019; Saad-Filho, 2020). 여기에 미중 무역분쟁과 코로나19 팬데믹의 발발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과 위기가능성을 더욱 증폭시키는 외부효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적인 경제상황도 그리 좋지 못하다. 한국은 2010년대에 2%대 성장률의 저성장체제가 고착화되고 있고, 수출·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압도적인 가운데 수출성장률과 투자율은 완만하게 하락하고 있는 추세이다(강두용·정인환, 2015; 석병훈·이남강, 2021).1 또한 불평등·양극화로 내수시장의 성장잠재력이 여전히 취약하여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부문을 제외하면 사실상 경제발전의 동력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전병유·정준호, 2018; 조영철, 2018).
그러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발전모델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외환위기 이후 정립된 발전주의적 신자유주의의 원리가 여전히 관철되고 있는가? 아니면 한국 발전모델에 다른 변화가 나타났는가? 한국 발전모델과 한국 경제성장의 향후 전망은 어떠한가? 이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 토대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발발 이전까지의 시기를 대상으로 한국 발전모델의 지속성과 변화(continuity and change)를 분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