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심형준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종교’라는 말은 19세기 말에 동아시아에서 등장한 새로운 말이었다. 과거에는 사용하지 않던 표현인데, 영어의 ‘religion’의 대역어로 일본에서 고안된 말이다. 그래서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그 원출처인 ‘religion’ 개념을 활용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종교’라는 말이 사용되면서 한국에서 근대적인 종교 개념이 사용되었다고 보는 시각은 그래서 논리적이면서도 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양상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를 느끼기 어려웠다.

한국 종교 개념 형성의 테제는 서구의 religion 개념이 일본 등을 통해 번역된 ‘종교(宗敎)’라는 말로 한국에 유입되면서 근대적 종교 개념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전에 없었던 새로운 개념이 정착하게 된 것인데, 그 개념이 근대성의 체제하에 있는 것으로 본다(장석만, 1992). 이러한 시각은 정진홍도 보여 준 바 있다(정진홍, 2003: 165-172). 한국인에게 없던 개념이 들어왔고, 그것으로 한국의 종교문화에 대한 이해가 바뀌었다고 본다.

반면에 ‘종교’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개념이 있었다고 보는 시각도 제시되었다. 김종서는 서구의 religion 개념과는 다른 고유의 ‘종교’ 개념이 발전되어 오다가 개화기에 이르러 서로 만나게 되었다는 시각을 보여 준다(김종서, 2001; 2005; 2006). 핵심적 내용은 ‘미분화’ 된 종교 개념이 근대적 개념을 만나 순수한 형태로 분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전통적 ‘교’나 ‘도’의 관념과 ‘종교’의 질적 차이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근대성과 종교 논의에서는 그다지 주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분명 과거 관념의 관성을 고려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