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영진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2015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제철·제강, 조선, 석탄산업’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8개현 23개에 이르는 자산을 시리얼 노미네이션(serial nomination) 형식으로 등록한 산업유산군 중에서, 후쿠오카 현 오무타(大牟田) 시·구마모토 현 아라오(荒尾) 시에 걸쳐 있는 미쓰이 미이케 탄광은 근대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던 석탄 산업을 상징하는 곳으로, 메이지 시기부터 석탄 채굴이 시작된 미야하라 갱(宮原坑, 1898)과 만다 갱(万田坑, 1902)을 위시해 미이케 탄광 전용 철도 흔적(三池炭鉱専用鉄道敷跡, 1905), 미스미니시항(三角西港, 1887), 미이케항(三池港, 1908) 등 다섯 장소가 자산으로 포함되어 있다. 미쓰이미이케 탄광은 124년의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일본 최대의 탄전으로, 근대 일본의 산업화를 언급함에 있어서는 빠트릴 수 없는 상징적 가치를 지닌 대표적인 기억의 장이자, 일찍부터 산업유산으로 거론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라 명명된 이 유산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이전부터 국내외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황선익, 2016; 竹内康人, 2018; 이영진, 2020). 물론 그 논란의 핵심은 이들 자산군 대다수가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들의 강제 징용이 이루어진 역사적 현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언급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란들이 몰고 올 파장을 의식했던 일본 정부 대표단의 사토 구니(佐藤地) 유네스코대사는 2015년에 열린 유네스코 본회의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정부로서도 징용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할 작정이며, 일본은 희생자들(victims)을 추도하기 위하여 인포메이션 센터 설치 등 적절한 조치를 설명전략에 포함시킬 생각이라고 약속했고, 그 결과 조건부 등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약속 이행은 계속 늦춰졌고, 결국 5년 후인 2020년, 도쿄에 세워진인포메이션 센터는 한국인 강제 동원이나 전시기 조선인 차별 등에 대한 설명을생략하거나, 혹은 그러한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하시마(端島, 군함도) 섬 원주민들의 검증되지 않은 발언을 소개하는 등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코로나 19 팬데믹 여파로 한일 간의 인적 교류가 사실상 중단되고, 논란의 인포메이션 센터 전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동안 잠잠했던 논란은 최근(2022년 2월), 일제 시기 강제 징용의 현장이기도 했던 니가타 사도(佐渡)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내각 관방이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결정했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재점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에도 문제가 되는 전시기의 강제노동을 둘러싼 논란을 피해 가기 위해 그 시기를 센코쿠(戦国) 시대(1467~1590) 말기부터 에도 시대(1603~1867)까지로 한정해서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편법은 그 기간을 1910년으로 한정한 메이지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에서도 이미 사용된 바 있는데, 문제는 이들 자산군들 중전후까지 가동을 계속해 온 생산시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강제연행된 조선인노동자의 기억을 포함한 다양한 입장의 당사자들의 기억이 뒤얽혀 복잡한 기억의 정치가 전개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