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고페이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중국 대륙1의 70~80대 주민들에게 현대 중국의 역사적 위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말할 것도 없이 마오쩌둥(毛澤東)을 떠올릴 것이다. 40~60대 주민들도 마찬가지로 마오쩌둥을 비롯하여 저우언라이(周恩來), 덩샤오핑(鄧小平)을 위인으로 인정한다. 반면 쑨원(孫文)2에 대해서는 중화민국을 창립한 총통이라는 단편적인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20~30대들은 쑨원을 언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중국 대륙에서 쑨원을 기리는 대규모 기념행사가 잇따라 개최되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 공산당의 쑨원에 대한 태도나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근래에 중국 대륙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은 중국 공산당이 건국 이전이나 건국 이후나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쑨원의 열렬한 신자였고, 그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기념해 왔다고 주장한다(張衛明, 2019: 146; 潘大禮 外, 2015: 77; 張海鵬, 2001: 58; 郭輝, 2016: 140; 付啟元 外, 2021: 81). 그렇다면 왜 대륙 주민들의 쑨원에 대한 기억은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나는가?

타이완에서도 쑨원은 국부(나라의 아버지)로 칭송되면서 숭배되는 상징적 존재다. 현재 타이베이의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는 국립 국부기념관은 대표적인 쑨원 기념 명소다. 이외에도 쑨원 이름으로 명명된 다양한 장소, 도로, 학교가 많은데, 흥미롭게도 이들은 중국 대륙과 동명(同名)인 경우가 적잖게 있다. 이를테면 중산대학교, 중산공원, 중산로, 중산당(中山堂) 등 양안에서 모두 쉽게 찾을수 있다. 그렇다면 타이완에서 그에 대한 기억이나 기념은 큰 변화가 없는가?

근대 국가에서 역사적 위인들은 국민을 통합하는 정치적 상징으로, 그로부터 파생된 기념 정치는 항상 뜨거운 관심거리이자 쟁점이었다(Alderman, 2002). 특히마주(媽祖)나 정청궁(鄭成功)은 분단된 양안에서 서로 쟁탈하려는 대표적인 상징이었고, 정치적 정통성을 나타내기 좋은 자원으로 간주되었다(蔡相煇, 1994: 452; 김란, 2014: 138).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쑨원 또한 양안의 정통성 경쟁에서 중요한 상징적 인물로 상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