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몽골제국이 사라진 후 각 지역에 남았던 여러 몽골제국의 후예 중에 조치 울루스의 제(諸) 칸국이나 모굴 칸국(Moghul Khanate), 북원(北元)처럼 국가를 이루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군소 세력의 명멸 과정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군소 세력은 주로 국가와 국가 사이에 위치하여 주변 여러 국가들 사이를 줄타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에 명과 모굴 칸국, 북원과 티베트 사이에는 명의 군사 행정구역인 위소로 편성되어 있지만 구성원은 몽골, 티베트, 투르크 등 비한족이며, 명의 강역 바깥에 존재하고 있으나 명과 긴밀한 관계를 지녔던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을 명에서는 관서 7위(혹은 8위)라 부른다.
이 위소들에 대한 기존 연구는 이들의 계보 및 위치비정, 그리고 이 위소들에 적용되는 명의 제도에 치우쳐 있으며, 이들에 관한 연구 또한 대체로 명의 기록에 의존한다(Serruy, 1963: 434-445; 1956: 82-90; 1977: 353-380; 杉山正明, 1982: 1-40; 2004; 杨富学, 2018; 曾文芳, 2002). 그러나 이 위소들은 엄연히 명의 강역 바깥에 있었던 별도의 세력이다. 그들의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모두 비한족이며, 특히 지배층의 경우 그들의 북쪽에 자리한 몽골리아 초원의 북원 황제 및 서쪽의 모굴 칸국의 칸과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 요컨대 그들 역시 몽골 제국에서 비롯한 세력인 것이다. 건국 초기에 국가의 서북부에 자리한 수많은 세력들 중에 일부를 택하여 번병으로 삼고 위소를 설치하였으며, 이들을 위무하기 위한 여러 제도를 마련한 것이 명이었지만, 이후의 역사는 명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대신 이위소를 둘러싼 주변세력의 영향과 그에 대한 위소의 대응이 이 지역의 역사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들이 명의 위소로 편성된 시점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동족이었던 북·서부 몽골 세력의 침입과 그로 인해 발생한 내홍을 겪으며 폐지에 이르는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고, 각 단계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를 고찰할 것이다. 우선 중원 왕조인 명은 북부와 서부에 자리했던 몽골 세력의 공세에 맞서 또 다른 몽골 세력을 번병으로 내세웠는데, 이 전략은 적어도 100년 이상 유효했다. 이러한 전략이 어떻게 유효할 수 있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두 번째로 북부와 서부에 위치한 몽골 세력, 즉 몽골리아 초원의 오이라트(瓦剌) 및 모굴리스탄 초원의 모굴 칸국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위소 내부에서도 파열을 알리는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즉 15세기에 위소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사건을 오이라트 및 모굴 칸국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하고, 위소를 둘러싼 주변 세력의 역학관계가 위소 내의 세력 구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찰해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들 위소가 자리했던 곳은 동쪽의 티베트 불교 문화권과 서쪽의 이슬람문화권이 접점을 이루는 곳으로, 단적인 예로 위구르 불교도들의 찬양시와 둔황막고굴의 공덕주 명단에 등장하는 몽골계 종왕이 이슬람 성인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 만큼 두 종교의 영향력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다. 이러한 지역에서 무슬림과 티베트 불교도를 함께 포함하고 있었던 위소의 폐지가 두 문화권의 경계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것이다. 즉, 이 글은 여러 국가와 문화권의 변경에 자리했지만 스스로는 국가를 이루지 못했던 군소 세력이, 국가 및 문화 간의 경계선이 과거보다 한층 명확해지는 15세기 이후에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살펴보는 사례 연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