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인수 (대구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21세기 초두, 한국에서는 동아시아론이 풍미했다. 2002년에 출범한 노무현정부가 한국의 국제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동아시아 균형자’로서의 정체성을 제시했던 것을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당시 ‘동아시아’로 지칭되는 권역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누가 무엇을 의제화하여 권역의 경계를 짓고 문제를 제기할 것인지, 침략과 대립을 넘어 평화와 화해를 구축해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관한 창발적인 고민은, 아쉽지만 부족했다. 어쩌면 이것은 고민의 부족이기 이전에 엄혹한 정치 현실이 가져온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냉전유럽의 평화와 열전 아시아의 전쟁이 동시대의 구조를 빚어냈듯이, 유럽의 탈냉전(Post-Cold War)은 아시아의 후냉전(Late-Cold War)의 토대 위에서 보장받았다.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속에서 균형자를 자임하고자 했던 한국 정부의 담대한 기획은, 이처럼 지속되고 있는 냉전의 힘을 과소평가한 것일 수 있고, 또는 그러한 현실을 부정하고 변화시키려 했던 성마르고 달뜬 정치 욕망의 산물이었을지도 모른다. 20여 년에 걸쳐 진행된 한국에서의 동아시아론의 부침은, 한반도 이슈를 다루기 위해 한반도 외부의 시야를 도입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과 그 실패를 반영하고 있다. 세계-권역-국가-지역으로 이루어진 단위에서 동아시아(권역 Region)는 주권국가로 구성된 근대 국가 간 체제의 공리를 상대화하고 해체하기 위한 분석 도구였지만, 그만큼의 내실이 현실적으로 존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최근에 동아시아론은 급속히 쇠퇴하고 있다. 한국의 언론 기사에서 ‘동아시아’라는 키워드는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그림 1). 한국 학계에서 동아시아를 주제와 소재로 삼는 연구물의 수 역시 최근에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그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