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정하 (이화여자대학교 중국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목천자전』에서 장생불사의 여신 서왕모가 주목왕을 만나는 요지는 이상향, 사랑과 이별의 장소, 선경 등을 상징하며, 전통 시기 한국에서도 애용된 신화 공간이었다. 19세기 조선 연행사들은 서양에서 수입된 상자 안에 렌즈를 넣어 구경하는 영상 장치를 요지경으로 명명했는데, 이는 여기서 상상해 왔던 요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뿐만 아니라 요지가 낯설고 새로운 것을 표상했던 것에 이유가 있었다. 요지경에서 연행사는 기존 세계관과 상치되는 상업과 민간 문화가 번성하는 청나라를 보았고, 개혁파 지식인은 기존 질서를 전복할 개혁의 가능성을 보았다. 20세기 30년대에 탄생한 만요에서 요지경 속 세상은 전통, 서구 문화와 식민 지배가 뒤섞인 혼종의 시대를 뜻했고, 1960년대에는 빠르게 도시화하는 서울을, 90년대에는 세대 갈등을 의미했다. 충격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사회상을 요지의 풍경으로 빗댄 것으로, 이는 상서로운 여신의 공간 요지가 한국적 맥락에서 ‘낯섦’이라는 새로운 상징을 부여받았음을 보여 준다.
주제어: 서왕모, 요지, 연행사, 요지경, 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