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채수홍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오늘날 인간은 세계의 어느 곳에 살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시공간 압축’으로 정보, 물류, 인간의 교류가 점점 빨라지고, 한 지역의 정치, 안보, 경제, 문화가 다른 곳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초연결 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통신-운송 기술, 소비시장, 위기와 재앙, 그리고 신자유주의 이념을 동력으로 삼아 자본주의는 세계 곳곳을 변형시키며 사회들의 상호의존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전 지구화(globalization) 양상을 고려하지 않고 인간의 삶과 문화를 논하는 것이 이제는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전 지구화의 복잡성은 이러한 문화적 변형이 권력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일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동질화 못지않게 이질화를 촉진한다는 데 있다. 정치·경제적 중심지의 문화가 각 지역의 문화를 대체하기보다는 지역에 녹아들고 있으며, 지역민의 실천을 매개로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세방화(glocalization) 과정은 세계화가 오히려 지역화를 강화하고 지역민의 저항을 촉발하는 현상을 낳기도 한다. 전 지구화와 초국적 문화의 융성 속에서 지역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가 재생하는 역설을 목도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