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영진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 글은 미나마타병 사건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의 하나인 1995년의 정치적 해결, 즉 ‘화해’의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최종적이자 전면적”이라는 슬로건이 잘 표현하고 있듯이, 1995년의 정치적 해결의 결과 “미나마타병은 이제 끝났다”는 인식이 일본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정치적 해결은 1990년대 초까지 미나마타병 투쟁의 본질이었던 미나마타병 인정과 그 보상/배상의 획득이 아닌 ‘정치적 구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조건부적 성격의 구제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인정 소송과 투쟁들을 계속해서 낳았다.
이 글에서는 1995년의 정치적 해결이 갖는 의미를 미나마타병 사건사의 맥락에서 복합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그 전사로서 역사적인 구마모토미나마타병 제1차 소송 전면 승소 판결과 짓소와의 보상협정서 체결 이후 더욱 엄격해진 인정 심사 기준에 따른 미인정환자의 속출, 그리고 인정투쟁 및 국가의 책임을 묻는 연이은 소송들을 검토한다. 나아가, 1995년의 화해를 거부한 채 싸움을 이어간 간사이 소송에 주목하며, 2004년 간사이 소송의 최고재판소 판결 이후 새로이 등장한,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노모어미나마타 국가배상 소송을 위시한 여러 법적 투쟁들에 대해 검토하면서, 1995년의 정치적 화해가 갖는 한계들을 다시금 새로이 문제 제기하고자 한다.
주제어: 미나마타병, 공해, 인정투쟁, 보상, 화해, 노모어미나마타 국가배상 소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