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정근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김윤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수료), 임수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수료)

2016년은 남북한의 수위 대학인 서울대학교와 김일성종합대학이 설립 70주 년을 맞는 해였다. 서울대학교의 역사는 일제강점기하에서 설립 운영되던 경성 제국대학과의 연속성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지만, 김일성종합대학은 여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반면, 소련의 영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형성기의 김일성종합대학은 평양의학전문학교나 대동공업전문학교와 같은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고등교육기관의 유산을 활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널리 알려진 초기의 교수진용 구성과정 때문에 새롭게 설립된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북한의 고등교육과 연구는 크게 김일성종합대학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 대학들과 과학원, 사회과학원 등의 학술기관에서 수행한다. 북한의 대학 역사는 주지하다시피 1946년에 김일성종합대학이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 설립사를 포함한 북한의 고등교육사와 관련해 아직 충분히 해명되지 못한 것이 소련의 역할이며, 대학 모델이다. 초기의 북한 대학 설립 과정에서 한국인들에게 선망 의 대상이던 일본의 제국대학 모델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는 소련군이 가져왔음직한 소련형 대학 모델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북한의 대학을 연구할 때 제기될 수 있는 질문 중 하나는 김일성종합대학의 설립에 관한 것이다. 예컨대 김일성종합대학이 설립된 1946년은 김일성이 북한 의 최고 지도자로 부상하기는 했지만, 명백히 최고 지도자로서의 권위나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고, 또한 어떤 학술적 권위도 갖지 않은 지도자였는데, 어떻게 최초이자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면서 ‘김일성’이라는 명칭을 사 용할 수 있었는가. 또한 김일성종합대학은 설립 후 2년 만인 1948년 의과대학 과 공과대학이 별도의 대학으로 설립되었는데, 그렇다면 1946년의 김일성종합 대학과 1948년의 김일성종합대학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세계적으로 볼 때,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소련군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소련군 의 정치적 영향력이 컸을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소련이 성취한 근대성 이 널리 인정되면서, 소련형 사회 모델이 널리 확산되었다. 이태준의 『소련기행 (蘇聯紀行)』(1947)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인정된 소련적 근 대성은 고등교육에서의 소련식 모델의 이식과 토착화를 용이하게 했으며, 북한에서도 초기 대학의 설립과 대학 교육내용에 소련의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나타내는 선행 연구가 많다(김동규, 1990; 김선호, 1990; 신효숙, 1998). 김동규(1989)의 경우 북한 초기의 고등교육정책을 1949~1950년대, 1953~1956년, 1961~1967년으로 구분해 그 변화를 설명한다. 그러나 소련형 대학 모델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함 께, 이런 시각에서 북한의 대학교육을 분석한 연구는 많지 않다(Kuraev, 2014). 이 글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일차적으로 소련의 고등교육, 즉 대학·연구기관 의 ‘소련형’ 모델에 관한 기존의 논의를 살펴보고, 북한의 대학 설립과 그 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소련형 대학 모델의 형성과 해체라는 맥락에서 살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