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강명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소장·언론정보학과)

아시아의 부상이 지식인 세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안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어떤 아시아인지, 누구를 위한 아시아인지에 대해 구체적그림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이 그리는 아시아가 ASEAN 각국이 그리는 아시아와 다르고, 남아시아, 서아시아는 더구나 다른 아시아를 상상하고 있다. 여러 가지의 상상의 지리를 다양하게 그리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주체들이 다양한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상상의 아시아(imaginary Asia)에 대한 그림의 다양함은 바람직한 작업일 뿐만 아니라 패권적이고 지배적인 권력의 작동을 제어하는 데 기여하리라 믿는다. 특히, 동북아시아 두 개의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이 국가주의(state driven)를 중심으로 상상하는 아시아가 패권적 위치를 차지하기 전에 다양한 아시아의 지도, 새로운 ‘아시아의 사회(the social formation of Asia)’를 상상하는 작업은 21세기 초 아시아가 부상하는 시점에서 긴요하다.

이 발표에서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의 비전 중에 하나인 “동아시아 해역(East Asia Ocean 혹은 Seas), 초국경 네트워크 기반 구축” 작업은 새로운 아시아적 사회를 그리기 위한 조그만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우리는 아시아 대륙의 동쪽 바다를 동아시아 해역으로 명명하고, 위로 극동러시아부터중국의 동북3성, 일본 섬과 한반도, 오키나와 필리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까지를 포괄하는 바다로 연결된 대륙과 섬을 설정하고자 한다. 동아시아 해역은 바다와 육지를 아우르는 공간이다. 그것은 국가적 영토로 묶인 영토와 바다일 뿐만 아니라 그 공간과 장소를 살아온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역사와 문화, 물질적·경제적 삶을 가리킨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 동아시아 대륙의 동쪽은 서태평양(West Pacific)이라는 범주로 흔히 묶여 왔고, 남북미 대륙과 아시아 대륙의 바다였다. 대서양에 비해 ‘평온한 바다(Maris Pacifici)’였기에 마젤란이 붙였다는 태평양의 명칭 자체가 서구의 해양탐사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제국주의 시대 이후 태평양은 그런 의미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서쪽이었지, 아시아 대륙의 동쪽인 적은 없었다. 탈냉전 이후에도 동아시아 대륙의 여러 국가와 사회를 연결하는 해양 네트워크는 여전히 미국의 역사적·현실적 존재와 영향력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TPP가 그렇고 ASEAN+2 모두 이런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 자장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