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점차적으로 공고화되고 있지만, 이는 자유주의가 수반된 서구식 민주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서구에서 일반적으로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 커플링(coupling)되어 정착되는 것과 달리, 무슬림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에서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디커플링(de-coupling)되어 있다(Menchik, 2016). 인도네시아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bhinneka tunggal ika)’을 국가 모토로 삼고 있지만 이 표현 자체에 국가적 한계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이상적인 바람일 뿐 현실 정치에서 다양성은 통 일성에 위협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하고, 대개는 이슬람에 기반한 사회질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2014년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이하 조코위)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인도네시아 민주주의는 제도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면에서도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군부 출신도 정치 엘리트 출신도 아닌 조코위 대통령이 중앙정치 경험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자카르타 주지사 신분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는 자카르타 주지사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고, 더불어 자신의 러닝메이트이자 부주지사였던 바수키 차하야 푸르나마(Basuki Tjahaja Purnama, 이하 아혹)에게 주지사가 될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화인이면서 기독교인이라는 이중약자(double minority) 신분의 주지사가 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 했다. 아혹 주지사의 등장은 다양성과 관용(tolerance)이라는 측면에서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혹의 주지사 승계와 관련하여 반대의 목소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혹이 화인이라는 점과 기독교도라는 점은 그를 반대하는 세력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1 하지만 당시 반대 집회를 주동했던 이슬람방어전선(Front Pembela Islam, 이하 FPI)은 1,000명 남짓한 인원을 동원하는 데 그쳤고, 큰 이목을 끌지도 못했다. 2009년 국무장관 자격으로 인도네시아에 방문했던 힐러리 클린턴이 “만약 당신이 이슬람, 민주주의, 현대적인 것(modernity), 여성의 권리가 공존할 수 있을지를 알고 싶다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세요.”라고 말할 정도로 인도네시아 민주주의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Landler,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