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4월 8일 아카데미 오브 아트(Academy of Arts: 현 호놀룰루 미술박물관) 개관식에서 창설자 애나 쿡(Anna Rice Cooke)은 미술박물관을 창설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피력하였다.
하와이에 있는 여러 나라와 민족의 자녀들은 미술과 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태어났지만 부모 나라뿐만 아니라 같이 어우러져 사는 하와이 원주민,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필리핀인, 북유럽인 등 모든 이웃들의 문화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한다. 미술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모든 민족의 공통된 본성을 알게 되고, 오래된 다른 문화를 토대로 이 하와이 땅에 새로운 문화의 꽃이 피어날 것을 기대해 본다(Ellis, 1990: 10).
물론 쿡 여사는 ‘다문화’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 속에는 이미 ‘다문화’라는 개념이 잘 드러나 있다. ‘다문화’라는 용어는 쿡의 발언이 있은 후 40여 년이 지난 1971년 캐나다 정부가 영어권과 불어권 커뮤니티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면서 처음 사용하였다고 알려져 있다(Raihanah, 2009: 63-70). 쿡은 하와이의 여러 소수 인종 중 하나인 백인이었고, 그가 창설한 다문화 미술관은 1852년부터 하와이에 뿌려진 다문화의 씨앗들이 피운 꽃이었다. 하와이의 다민족 사회는 약 1,500년 전 태평양의 마케사스 섬과 타히티 섬 등에서 이민 온 하와이 ‘원주민’과 사탕수수 농장에 도착한 노동 이민자들로 이루어졌다. 이 속에서 움튼 것이 바로 다민족 문화다.
그렇다면 하와이의 다문화, 혹은 다민족 문화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누가, 어떻게 하와이의 다문화를 빚어내었을까? 정부의 이민 정책이 사탕수수 농장으로의 이민 상황을 결정지었지만, 과연 그러한 정부의 정책이 다문화 형성에도 제도적으로 관여하였을까? 한인 이민자들도 하와이 다문화에 기여한 바가 있을까? 특히 한국인이 정치적으로 일본인으로 간주되던 일제 식민지 시대의 하와이 사회는 한국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 논문은 이런 여러 질문에 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