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식민지 조선의 수도에 경성제국대학(이하 경성제대)과 함께 부속 도서관이 건립되었다. 약 55만 권의 장서를 보유한 경성제대의 대학 도서관은 식민지 조선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의 고문헌실에 소장 중인 이 경성제대 장서에는 12만 권에 달하는 서양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학을 나누는 학제와 언어 간의 장벽 때문에 이 도서들은 그동안 제대로 이용되지도, 조명받지도 못했다. 2014년 필자는 이 서양서 장서의 구성과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구성된 연구조사팀에 참여했다. 연구책임자 외 4명의 연구원들은 역사서 중심으로 서양서를 언어별, 주제별로 나눠 그 구성을 대략적으로 분석했다. 프랑스사 연구자인 필자는 여기서 독일어 장서(5만 5,489), 영어 장서(4 만 3,526) 다음으로 수가 많은 프랑스어 장서(1만 4,256)를 담당했다.
필자의 2014년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서양서는 법학을 제외하면 문학, 철학, 역사, 사회사상 등 인문학 서적들이었다. 서양 제국들이 식민지에 세운 도서 관의 경우 장서의 규모도 적고 그 구성 역시 대부분 실용서에 머문 것과 대조적이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경성제대가 식민지 조선에서 문화적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목표하에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경성제대의 교육과정은 보편적 교양주의를 표방했다(정근식, 2010). 또한 경성제대는 제국대학 체제의 일부로서 교수들에게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허용했고, 그 결과 특권적인 학문 연구 공간이 만들어져 많은 학술 서적들이 들어왔다. 애초에 연구조사팀은 경성제대 장서 구성에서 식민주의적 지식-권력 구조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장서 구성에 관여한 요소들은 사실상 매우 복잡하고 다양했다. 도서관의 구매 관행이나 구입 자금 입수 경로 등 여러 요인에 의해서 경성제대 도서관의 서양서 장서는 당대의 서양 지성사를 매우 불균형한 형태로 반영하게 되었다(권윤경, 2015; 박흥식 외, 2014).
그러나 이 연구조사를 통해 구성원들은 이는 단지 기초조사일 뿐, 장서 구성 에 관여한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들의 네트워크를 밝혀내는 작업은 이제 막 시작이라는 점을 절감했다. 우선 가장 절실한 것은 식민주의에 대한 더 폭넓은 비교사적 연구 관점이었다. 경성제대와 그 장서의 특성을 조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식민지 대학들과의 비교 연구, 그리고 일본의 제국대학 체제 내에서 다른 대학들과의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동시에 기존의 비교 연구는 비교의 범주인 각 제국을 하나의 닫힌 단위로 간주하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당시 제국 정책과 사 상은 제국의 경계를 넘어 활발하게 교류되고 전유되었다. 새로운 비교 연구는 이러한 간(間)제국적(inter-imperial) 연결망을 복원함으로써 제국 정책 간의 병치 및 상호 참조 현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