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분쟁은 민족 그 자체가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분쟁이 아니다. 민족은 분쟁의 기표(記標)이자 분쟁의 원인이 되는 다양한 문제들이 표출되는 통로다. 이러한 점은 1990년 6월 키르기스스탄 오쉬 지역에서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간에 발생한 대규모 유혈 사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소비에트연방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붕괴되어 가던 세계적 변화의 시점에 중앙아시아 내륙 산악 지역에 위치한 구 소비에트공화국 키르기스스탄, 그것도 그 변방 지대에서 일어났던 이 분쟁을 분석한 연구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또한 이 사건을 다루더라도 중점적으로 논의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글은 이처럼 널리 주목받지 못한 이 사태에서도 다양한 조건과 요인의 작용에 의해 발생하고 복잡한 사회적 과정과 관계를 거쳐 영향과 여파를 남기는 민족분쟁의 속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각기 다른 세 논문을 통해 살펴보려 한다. 첫 번째 논문은 오쉬 분쟁의 분석에만 온전하게 집중하는 사례연구이고, 두번째 논문은 민족분쟁의 기억이 이후에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 두 사례를 비교 분석하는 연구이며, 세 번째 논문은 서로 다른 두 직업 경쟁의 양상에 의해 민족 갈등이 서로 다른 두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주장으로 민족분쟁의 유형화·일반화를 시도한다.
한편, 세 논문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구조적 요인으로 민족분쟁을 설명하거나 민족분쟁에 관한 이론화를 시도하는 입장과는 거리를 둔다. 첫 번째 논문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모델이 구소련의 민족 갈등을 연구하는 데 그다지 적합하지 않으며 사회학적 분석과 대조되는 미시적 접근법을 사용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면(Tishkov, 1995: 133, 135), 두 번째 논문은 구조적 요인이 민족 동원의 발생을 설명하는 데에는 상당한 역할을 한다고 인정하면서도 동원 과정 내에서의 변화 혹은 동원 과정들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를 갖는다고 지적한다(Fumagalli, 2007: 569-570). 세 번째 논문 역시 구조적 요인이 민족에 기반한 집단행동의 차이를 밝혀내는 데 있어서는 필수적이라고 하면서도 구조가 직접 민족 동원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므로 구조의 영향을 받는 행위자의 인식과 결정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인다(Kolstø, 2008: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