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담을 것인가?”
일찍이 한 노(老)석학은 한국정치사상에 대한 필생의 작업을 집대성하며 이와 같이 물은 바 있다. 한 문명의, 어느 한 나라의 사상을 조망해보려 한다면, 대체 거기에는 무엇을 포함시키고 또 어찌 엮어내야 좋을까. 이렇게 통사(通史)를 기술한다는 것은 특정한 주제나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가 아니라, 그 정치 공동체, 그 겨레 나름의 문제의식을 충실히 짚어내고, 거기에서 피고 진 갖가지 숙려(熟廬)를 오롯이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극히 까다로운 작업일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이때 대상으로 삼는 것이 다름 아닌 정치사상임에랴.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겠지만, ‘정치’ 사상은 “정치적 변화와 발전을 유도하고 추동하는 동력” 으로서 해당 사회를 실제로 변화시켜 왔다는 점에서 특수성을 갖는다(정영훈 외, 2006). 덕분에 정치사상에 대한 고찰은, 그에 대한 통사적 고찰은 말 그대로 그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요하게 된다.
어려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그 영향이 너무나 지대했던지라 세 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고, 나아가 새 시대마저 열어젖힌 듯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 정치사상은 당세를 초월한 듯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그 “생산과 유통 과정” 쪽에 유의해 본다면, 그렇게 가장 혁명적이었던 사상에서조차 역시 당대적 환경의 제약을 피할 수는 없었다(신복룡, 2011). 바꿔 말하자면 결국 “아무리 위대한 사상가의 사상이라 하더라도 그 사상의 본질과 내용은 그 사상가가 놓여 있는 환경과 여건, 곧 시대적 제약”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정치사상에 대한 고찰에서는 그것이 미친 사회적 영향 문제 이상으로, 거꾸로 그 사상의 배후에 존재하는 당대의 환경요인 및 그와의 관계에서 갖는 의의에 대한 또 하나의 포괄적인 이해가 필수적인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2010년 출간된 이래, 영어판을 비롯해 이제 한국어판으로 번역, 간행되기에 이른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학자 와타나베 히로시(渡辺浩)의 『일본 정치사상사』는 “일반 독자를 위한 간략한 통사”로서 저술되었음에도, 이 이중의 과제를 균형 있게 충족시켜낸 보기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혹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소설’처럼 쉬이 읽힐 정도로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풀어 냈다는 점에서 더더욱 특기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