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정재원 (국민대학교 국제학부)

1980년대 말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논쟁이 촉발되었던 소위 ‘시민사회의 재발견’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인 서구 사회에서의 신사회 운동, 비중심부 지역 저발전 국가들에서의 재민주화, 그리고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시민사회의 저항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시민사회의 발전이 없는 정치적 민주화는 매우 불안정한 민주화이며,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명제는 타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체제전환 국가들에서도 일반적으로 시민사회는 체제전환 과정과 민주주의 공고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인정되고 있다. 많은 연구들은 유사한사회주의 체제의 경험을 갖고 있던 국가들 중 민주주의의 공고화 달성에 상대적으로 성공한 국가들에는 발달된 시민사회가 있음을 들어 시민사회의 발전 정도와 민주주의의 공고화 간에는 일정한 관련이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소위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공식 선언한 탈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시민사회의 재출현과 민주주의 발달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적인 논의는 여러 이유로 비관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서구식 시민사회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가의 축소와 시장의 극대화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국가 통제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이념이 국가로부터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공론장이라는 시민사회라는 개념과 접합되는 부분이 생겨나면서, 본래 자유주의 정치철학적 해석에 입각한 시민사회론은 경제적으로도 한층 더 자유주의와 친화성을 갖게 되었다. 특히 최근 NGO화로 상징되는 시민사회의 성장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전 세계적 확산과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NGO가 주도하는 시민사회의 변화는 국내적으로뿐만 아니라,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적합성을 가진 순응적인 시민사회를 동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