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전쟁에서 중국의 패배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2014년 중국 학계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국 군부 측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해외 매체들은 중국 ‘매파(鹰派)’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전략문화촉진회 상무부회장 겸 중국 인민해방군인 나원(罗援) 소장의 의견을 중국을 대표하는 관점으로 보고 있다. 그는 2014년 3월 『신화통신』에 “갑오전쟁 패전 원인 10항”이라는 내용의 글을 기고했다: ① 나라의 손상(国殇)은 낙후한 정치체제에 의한 것이었다. ② 전쟁 패배 원인은 탐욕과 부패에 있다. 부패를 없애지 않으면 싸우기 전에 이미 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③ 국가가 강해지려면 군대가 강해야 한다. 군대가 강하지 않으면 부국은 될 수 있어도 강국은 될 수 없다. ④ 군대를 강화시키려면 반드시 관념의 혁신이 필요하다. 낙후된 생각들로 인해 실패하는 것이다. ⑤ 강한 군대의 핵심은 군대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고, 용감하지 못한 군대는 흩어진 모래와 같다. ⑥ 강한 군대를 세우려면 우선 장비부터 강화해야 한다. 장비는 양과 질 모두 우세해야 한다. ⑦ 강한군대는 항상 준비되어야 하며, 준비된 군대만이 후환이 없다. ⑧ 강한 군대는 전체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작은 단점이 전체적인 패배를 초래할 수 있다. ⑨ 강한군대는 반드시 영활한 전략과 전술이 있다. 검이 남보다 못하다면 검술은 남보다 나아야 하는 것이다. ⑩ 전쟁에 응해야 화해할 수 있다. 전쟁터에서 얻지 못하는 것은 담판의 자리에서도 얻기 어려운 법이다(Xinhuanet, 2014/03/10).
외에도 중국 갑오전쟁 실패 요인에 대해 더 면밀히 분석한 중국 학자들도 있다. 예를 들면 위명(魏明, 2014)은 중국의 양무운동과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비교했다. 위명의 비교연구에 의하면, 사회 변혁의 관점에서 갑오전쟁 전의 양무운동과 메이지유신은 다르다. 메이지유신은 전면적인 변혁을 통해 군사적 변혁을 포함한 사회 전반적인 근대화를 실현했다. 이에 비해, 양무운동은 군사적 변혁에 한계가 있었고, 청나라 군대가 가지고 있는 고전적인 군사 형태를 바꾸지 못했다. 역사적 사실로 보면, 양국의 다른 군사적 변혁이 초래한 군사력의 차이가 갑오전쟁에서의 서로 다른 운명을 결정지었다. 레이이(雷颐, 2014a)에 의하면 ‘청조’ 체제와 베스트팔렌 체제의 차이로부터 출발한 갑오전쟁은 ‘청조’의 최종적인 붕괴를 낳았으며(雷颐, 2014b), 갑오전쟁 당시 중국은 “비근대국가”이고, 일본은 이미 “근대국가”였으므로 중국의 참패가 우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