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국은 세월호 사건, 북한의 핵문제를 비롯한 남북 관계의 악화 등 해결해야 할 국내외 현안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대결 양상을 보이며, 시민사회의 각종 요구에 정부가 신속히 대처하지못하면서, 정치와 국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커져가고 있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도 커다란 변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일본 이외에 중국이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새로운 지역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 간 영토 분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한국이 남북한 및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과 외교활동의 중요성이 커져가고 있다.
2014년 한반도의 상황과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천을 ‘위기’가 아닌 개혁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 아래 과거 한반도에서 진행되었던 개혁 활동의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 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데 시사점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120년 전 갑오개혁은 당시로서는 국내 주요 개화파가 권력을 장악하여 개혁 구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특히 제2차 김홍집·박영효 내각은 개화파가 권력을 장악하여 부국강병 구상을 현실정치로 구현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개화파들은 결과적으로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여 쫓겨나거나 죽음을 당했다.
만약 개화파가 살아나 다시 갑오개혁 현장으로 되돌려진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120년이 지난 현재 한국 상황을 보고 이들 개화파는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또는 방안을 제시했을까? 라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갑오개혁에 참가한 개화파들에게는 ‘친일’이라는 이미지, 또는 외세와의 관련 등 커다란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만 외세의 개입과 정치적 이해관계의 갈등에서 제한된 기회와 역량을 어떻게 활용했는가의 측면에서 당시 개화파 관료들의 정치 이념과 현실 정치의 상황을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