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갑오년의 가장 큰 국제정치적 의미는 청일전쟁에서 청의 패전으로 인해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이 종식됨으로써 동아시아에 온존하던 전통적 사대질서가 완전히 폐지되고 근대 국제정치 질서로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의 대외관계에 남아 있던 전통적 요소는 1894년 청일전쟁 발발과 한반도에서 일본의 군사적 우위라는 국제 정세 하에서 추진된 갑오개혁을 계기로 종식되었으며 1895년4월 17일 체결된 시모노세키조약에서 청이 조선의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함으로써 국제적으로 공인되었다. 청의 유일한 조공국(朝貢國)으로 남아 있었던 조선이 속방관계를 청산했다는 것은 국제정치적으로는 전통적 동아시아 질서가 완전히 해체되고 근대 국제질서로 일원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조선의 한 국가적 차원에서는 전통국가가 근대국가로 재탄생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연구는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시기 조선에서 국가·자주 개념의 변화를 당시 외무독판, 외무대신을 지냈던 김윤식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접근은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김윤식은 갑오개혁을 주도한 핵심적 인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대원군이나 박영효 같은 정치적 비중을 지닌 인물도 아니었고, 유길준처럼 정변을 기획한 전략가도 아니었다. 다양한 정파가 참여한 갑오개혁에서 그는 특정 정파를 대표하는 인물은 아니며 조선 정부의 대응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더욱 어렵다. 오히려 내각의 잦은 교체에도 불구하고 갑오개혁의 전 시기에 걸쳐 거의 유일하게 대신의 직책을 유지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이는 그가 처세의 달인임과 동시에 분명한 정치
적 입장과 노선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