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정근식(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중국과 북한 사이의 국경도시 단둥(丹東)에 있는 ‘항미원조기념비’는 한국이나 동아시아의 현대사와 문화사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기념비는 한국전쟁 정전 40주년이던 1993년 7월에 세워진 것으로, 단둥 시 배후에 있는 높은 산(영화산)에 세워졌는데, 높이 53m, 기단의 길이 10.25m다. 이 기념비의 높이는 한국전쟁의 정전이 이루어진 1953년을 기념하는 것이고, 기단의 길이는 중국 인민지원군이 공식적으로 참전한 날을 나타낸 것이다.

이 기념비는 공간적 입지와 높이에서 뿜어내는 수직성(verticality)과 전망성이 특출하고, 기념해야 할 시간들을 물질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성이 인상적이다. 이 기념비 앞에 서면, 단둥 시내와 압록강, 그리고 강 대안의 신의주 시내가 차례로 내려다보인다. 이 기념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와 대비되는 여러 기념비가 떠오르고 동아시아의 전쟁과 이에 후속하는 냉전의 지평을 성찰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냉전의 심상지리’에서 이 기념비의 맞은편에는 한국전쟁에서 중국 인민지원군과 맞섰던 유엔군 총지휘자 맥아더 장군을 기념하는 동상(1956)이 인천에 존재하고, 또 전쟁의 동맹자였던 북한이 세운 ‘우의탑’(1959)이 평양에 존재한다. 이 ‘우의탑’은 한편으로는 동일한 장소에 있는 해방탑(1946)을, 다른 한편으로는 다롄(大連)의 뤼순(旅順) 구에 있는 또 다른 ‘우의탑’(1957)을 연상시킨다. 이 기념비들은 모두 동아시아의 냉전·분단체제(정근식, 2014)를 형성한 연속전쟁들에서 유래한 적대와 동맹의 상징들이다. 만약 우리가 냉전 기념비들의 지도를 작성한다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핵심 구성요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