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은 부르주아-자본주의 질서를 혁명으로 전복시키려는 국제적 운동과 소련이 연계되어 이루어진 결과였다. 소련의 독재자들(또한 훗날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의 독재자들)은 자신들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곧 일어나게 될 세계적인 혁명운동의 선구자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독재정권은 단지 물리적인 힘과 공포만으로 유지된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정권의 설립으로 물질적 이익과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된 사람들에 의해서도 유지되었다. 그와 동시에 소련 밖에서도 크고 작은 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들 역시 모스크바의 지원에 의존했다. 이에 따라 소련에게 위협을 느낀 자들은 자신들의 자유뿐만 아니라 재산과 전체적인 삶의 방식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국가사회주의자들에 격렬하게 저항했고, 공산군들도 독일과 그 동맹국들을 격파하는 데 상당한 공을 세웠다. 이 때문에 해방된 유럽국가들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전례 없는 공감과 신규 당원의 입당 현상이 나타났다. 반(反)파시스트 세력의 광범위한 연합이라는 공감이 많은 이들에게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공산주의자들은 전후 첫 선거에서 상당수의 표를 얻었다. 이러한 성공은 유럽의 정치 판도가 대체적으로 왼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영국 노동당이 1945년 7월 투표에서 큰 승리를 거둔 후, 다른 국가들에서도 사회민주당의 투표 점유율이 높아졌고 새로운 기독교민주당 중 일부는 ‘기독사회주의’라는 이름하에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파시즘의 실패 이후 자유주의의 실패가 이어지자 많은 유럽 국가는 자국이 사회민주주의의 경로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혁명을 통한 격변이 아니라 주요 산업의 국유화와 복지국가의 확장에 의해 이루어질 것으로 생
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