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 대학)

냉전은 70년 전 한국에서 시작되었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한반도는 언제나 이 갈등의 축소판이었지만, 오바마가 쿠바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이제는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의 박물관이기도 하다. 미국의 전후 구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세 개의 큰 문제였다. 그중 가장 중요한 문제는 1930년대 초반에 파탄 난 세계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둘째는, 지구의 절반이 넘게 퍼져나가는 소련과 공산권에 대한 대응이었다. 셋째는, 식민지에서 독립국이 된 수십 개의 국가가 등장하는 상황의 틀을 잡고 그것을 통제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한국은 이 세 가지 문제 각각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또 한국은 냉전기 미국전략이 형성되는 과정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1960년대에는 세계 경제의 재건과 성장에 중심적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이 영영 답을 찾지 못한 것은 세 번째 문제, 즉 반(反)식민주의와 혁명적 민족주의였다.

오늘날 이런 입장과 내용을 서술하는 역사가는 많지 않다. 통상적으로 한국은 냉전의 기원에 대한 연구에서 간과되며, (1950~53년간 일어난 사건에만 한정한 의미에서의) 한국전쟁은 1948년 베를린 사태나 1962년 쿠바 사태처럼 미-소 간의 지구적 경쟁에서 파생된 여러 갈등과 위기 중 하나로서 (아마도 ‘제한전’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는 점만 빼면) 냉전의 중추 혹은 핵심적 측면에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역사적인 개혁 이후 세계 경제에 참여하고 30년간 수출주도형 개발을 추구했던 중국을 상대하는 미국 경제 전략의 모델이자 선구자로서 남한의 역할 역시 간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