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충유에쩐 (국립칭화대학)

이 훌륭한 패널에 참여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범태평양 냉전레짐(transpacific Cold War regime)에 관해 깊은 통찰력과 혜안을 보여주신 리사 요네야마(Lisa Yoneyama) 교수의 분석에 대한 제 답변을 요청해주신 강명구 교수와 김종철 박사의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범태평양 냉전 레짐은 아시아 지역 국민사(국사)교과서 논쟁의 근원이 되는 문제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제 논평은 요네야마 교수의 관계 비교주의적(relational comparativism) 접근법을 활용한 작은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실험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오롯이 제 책임이며 제가 사과드릴 부분입니다. 중국과 타이완(臺灣)에서 베트남 전쟁의 기억이 미치는 영향에 관한 저의 연구에 등장한 여러 논평을 종합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 개입, ‘종군 위안부’ 문제, 일본의 수정주의적 접근법이 지닌 ‘남성 히스테리아’라는 요네야마 교수의 주장을 따르고자 합니다.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국민당 정부가 대외적으로는 일본과, 대내적으로는 공산당과 싸우는 사이 공산당이 권력 기반을 확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본의 침략이 도움이 되었다고 1964년에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毛澤東,1994). 항일 전쟁에 관한 대중적 기억이라는 것은 개혁기가 시작된 최근 수십년 사이에 비로소 처음 등장했습니다. 공산당이 본토를 장악하면서 항일전쟁의 경험은 국민당과의 내전, 한국전쟁, 미-소 블록 간의 세계 냉전과 같은 여러 사건과 중첩되었습니다. 항일전쟁을 주도한 것은 국민당이었기 때문에 전쟁의 기억은 일본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데 국민당이 공헌했다는 사실을 대중이 새삼 깨닫게 되는 의도치 않은 계기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중국 공산 혁명의 기원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습니다. 또한, 참전용사 단체의 존재감과 발언권도, 항일전쟁에서 그들의 역할에 관한 합의도 부재한 상태에서 일반 대중과 참전용사들은 전쟁의 기억에 대해 침묵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미국 점령기 동안 야전 기록, 참전 일지, 진술서 등의 형태로 남은 참전용사의 기록을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 The Supreme Commander of theAllied Powers)가 검열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이래 최근 여러 기념일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증거를 통해 전쟁 기간의 역사를 새롭게 고찰하고자 하는 관심이 되살아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