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이 시작된 이래 말레이시아의 민족-종교 민족주의와 세계 이슬람주의가 뒤얽히면서, 본래 사회에 내재되어 있지 않았던(dis-embedded) 이슬람 보수주의가 야기한 깊은 정치 분열은 야당 세력을 심각하게 무력화시키면서 말레이시아 급진 정치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게 했다. 이슬람의 정치화는 정치 동원의 기반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잠식시켰다. 첫째, 이슬람 율법 시행 문제를 놓고 내분이 일어나면서 2018년 총선에서 야당 연합을 구축하려던 계획이 좌절됨에 따라 국가 주도의 제도 개혁 희망이 사라졌다. 둘째, 시민사회 내에서도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을 지지하는 집단과 세속주의를 옹호하는 집단 간에 균열이 심각해지면서 변화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셋째, 이슬람의 정치화가 기존 정치 구획을 흐리고, 헷갈리게 하면서 계급과 이념 지향은 더는 집단 동원의 근거로 충분하지 않게 되었다.
이처럼 말레이시아 정치가 신성화되면서 공통점이 없던 사람들이 이슬람화에 대한 찬반에 따라 무리 짓게 되는 기이한 동거 상태가 나타났다. 이슬람화를 둘러싼 싸움은 양측의 지루한 시위와 폭력 사태뿐만 아니라 끝없는 정치 교착상태를 초래했다. 당혹스러운 것은 양측이 똑같이 교조적인데다가 각자가 그리는 말레이시아의 이상적 공적 생활의 차이에 대해 전혀 타협할 뜻이 없다는 점이다. 당혹스럽다. 이슬람을 두고 일어나는 이러한 정치 양극화는 권리, 정의, 자유와 같은 개념을 이슬람과 서구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보는 국가주의적 태도와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더욱 불길하다. 이슬람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금세 서양의 음모의 앞잡이로 격하되고 배척된다. 서구의 이슬람에 관한 비판적인 주장들이 내세우는 미묘한 차이를 또렷이 드러낸다고 해도 윤색되고 오해 받기 쉽다. 저항세력의 무력화는 급진 저항세력은 활기차고, 정당하며 희망찬 말레이시아
의 미래를 위해 대의를 결집시킬 수 있는 노선의 변경과 대안의 필요성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