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박경숙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1920년대에서 1940년대에 태어나 현재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한국과 일본의 노인은 거시적인 시대 변화를 압축적으로 경험했다. 한국 노인의 생애는 봉건통치질서가 와해되고 일제의 동화와 차별적인 지배에 있던 정치·경제적 격변기에 시작되었다. 일본 노인의 생애는 메이지유신을 통해 중앙집권적인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서양제국의 문물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제국주의 근대화를 추진하던 시대에 출발했다. 탈제국주의와 냉전체제가 굳어진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과 일본사회가 권위주의적 국가중심 정치체제에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어나갔을 때 그들은 경제현장과 가족에서 근대의 질서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 이르러 경제, 사회, 문화의 경계가 넓어지고 변형되는 시기에 그들은 노년을 살아가고 있다.

노인의 생애사는 근대적 제도, 통치권력, 이념에 영향을 받았고 또 역으로 그들의 삶의 전략은 근대적 제도와 관념과 통치방식을 구성했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년에 이르는 동안 다양한 생존 전략을 개발하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근대와 관련된 다양한 경계가 형성되고, 변형되고, 다시 구성되었다. 이렇게 압축적으로 근대화 과정과 탈근대화를 체험한 노인의 생애사 연구는 한국과 일본의 근대적 사회 특성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자 방법이다. 문헌과 공식적인 기록이 지배 권력의 역사관에 바탕하고 있다면 보통 사람들의 삶의 경험과 인식은 시대 변화에 훨씬 폭넓은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