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엄한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아랍세계는 탈냉전 세계화 시대에 있어 가장 집중적인 언론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낯선 지역으로 남아 있다. 이 지역에 대한 논의는 시민사회, 신자유주의, 정보화, 좌파와 우파 등 현대사회와 관련된 일반적인 주제들보다는 히잡, 자살폭탄테러, 명예살인 등 이 지역의 고유한 현상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점점 더 개방화되는 세계 속에서 외딴 섬처럼 존재하는것 같지만 아랍세계는 지리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외부세계에 그 어느 지역보다도 열려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찍부터 외부세계에 개방되었던 아랍세계가 고립된 섬과 같은 특수성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은 실제인가, 환상인가?

이 글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랍세계에 대한 논의가 지닌 특징을 살펴보고 이를 오리엔탈리즘적 전통과 연관해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물음은 아랍 근대사상의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정체성에 관한 문제의식은 근대 이후 비서구사회에 있어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아랍세계 또는 오리엔트 세계에서 유독 중요하게 제기되는 것은 서유럽과의 지리적, 역사적 연관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정체성 문제와 연관된 것이지만 아랍세계에 대한 논의의 또 다른 특징은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중요한 설명변수로 여긴다는 점이다. 근대 오리엔탈리즘이 오리엔트 세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이슬람을 상정한 이후 지금까지도 이슬람은 정치체제, 사회운동, 일상생활, 사고방식, 전쟁 등 아랍세계의 현실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간주된다. 이는 역으로 세속적이고 보편적인 요인들에 대한 무관심을 동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