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오명석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이 글은 동남아 이슬람의 쟁점을 이슬람과 현대성이 맺는 관계에 대한 이슬람적 담론과 실천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문제의식을 설정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서구적 현대성에 대한 이슬람 근대주의(또는 신근대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의 담론적 대응을 분석하고, 다원적 현대성 또는 대안적 현대성과 같은 최근의 논의와의 연관성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특히 이슬람 근대주의가 지향하는 이슬람적 현대성이 현실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고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가를 말레이시아의 이슬람화 정책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또한 동남아 이슬람의 역동적 변화를 무슬림 세계의 지구적 연결망과 지역적인 수준에서의 사회적 맥락을 동시에 고려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동남아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로 흔히 지적되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 또는 문화적 혼성성이다. 동남아의 문화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동남아 사회가 공유하는 문화적 실체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동남아 연구자들은 난감해 하며, 만족스러운 답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니미즘, 양변친족제, 수도작 문화와 같은 동남아의 원(原)문화가 생활의 저변에 깔려 있으면서, 동남아의 거의 전역에 걸쳐 장기적으로 지속된 힌두-불교 문화의 전파과정, 13세기 이후 아랍과 인도의 영향하에 전개된 이슬람화 과정, 그리고 16세기 이후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미국에 의한 식민지 분할통치 과정은 역사적 시기에 따라, 그리고 지리적 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색채와 무늬와 질감을 갖는 문화 직물을 만들어 놓았다. 또는 다양한 문화적 전통이 겹겹이 쌓여 있는 중층적 구조의 문화 지층을 형성하였다. 이 글은 이슬람화 과정의 중심에 놓여 있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대상으로 하여, 동남아 이슬람 연구의 핵심적인 주제영역과 문제의식을 설정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