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표준 경쟁의 시각에서 미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벌인 패권 경쟁의 세계정치를 살펴보았다. 특히 이 글은 21세기 세계정치의 선도부문(leading sector)인 컴퓨터 산업과 인터넷 서비스 분야에서 벌어진 3차원 표준 경쟁에 주목했다. 이 글이 원용한 표준 경쟁의 개념은 민간 기업들이 시장에서 벌이는 기술표준 경쟁의 의미를 넘어선다. 국제정치학의 시각에서 본 표준 경쟁은 정책과 제도를 둘러싼 표준 경쟁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정보산업의 미래에 대한 기술비전이나 인터넷시대의 이념과 정체성과 관련된 좀 더 넓은 의미의 표준 경쟁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1990년대 벌어진 미국과 일본의 표준 경쟁은 미국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의해 독자표준을 위한 일본의 시도가 좌절되는 과정이었다. 마찬가지로 2000년대 들어 중국이 미국에 대해서 벌이고 있는 세계패권경쟁의 양상도 기술과 제도 및 이념의 표준을 놓고 벌이는 3차원 표준 경쟁으로 이해할 수 있다.
21세기 세계정치의 최대 화두는 중국의 부상이다. 중국의 부상에 주목하는 논의의 이면에는 세계정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힘의 이동’에 대한 관심이 깔려있다. 최근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이에 걸맞은 군사력과 외교력 그리고 소프트 파워(soft power)까지 갖추고 미국의 세계패권에 도전할 것이냐가 주요 관건이다. 그런데 이러한 힘의 이동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나라가 힘이 더 세져서 상대를 압도하게 되고 이에 따라 국제질서에서 힘의 균형이 변할 것이라는 통상적인 인식의 범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최근 세계 및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힘의 이동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국가 간 패권 경쟁이라는 전통적인 시각을 넘어서 좀 더 복합적인 시각을 갖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