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일본 지식인은 보수와 진보의 구별 없이 한국을 ‘특수한’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지식인이 한국을 보는 시선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개화시켜야 할 대상’으로서의 한국관이다. 이러한 시각은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의 조선관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조선을“하나의 작은 야만국(一小野蠻國)”으로 보았던 후쿠자와에 의하면 일본은 “조선의 국세가 미개하다면 이를 인도해야 하고, 국민이 고루하다면 이를 깨우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福澤諭吉, 1959). 즉 그에게 한국은 ‘지도’와 ‘개화’의 대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침략’을 위장한 ‘연대’의 대상으로 발전했다. 이는 후쿠자와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다루이 도키치(樽井藤吉)의 ‘대동합방론(大東合邦論)’이나, 또는 오이 겐타로(大井憲太郞)가 주도했던 ‘오사카(大阪)사건’(1885)의 동기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던 한국관이다.
또 다른 하나의 시선은 ‘이익선’으로서의 한국관이다. 일본의 독립과 안전보장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본토, 즉 주권선의 방어와 함께, 주권선의 안전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인접 지역, 즉 이익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전의 일본 대외정책의 근간은 ‘이익선’을 대륙으로, 시베리아로 그리고 동남아시아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었다. 한반도는 이 이익선의 요체이고 최전선에 있었다. 메이지 유신 후 일본의 지식인들은 일본의 안보와 국력확장을 위해서는 대륙으로 통하는 ‘문’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를 선점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없었다. 만일 한반도가 제3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간다면 일본의 안보가 위태로울 뿐만 아니라 대륙 진출의 길이 막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대륙낭인의 선구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아라오 세이(荒尾精)가 일찍이 일본의 영토 보존과 대륙 진출을 위해서는 “조선부식의 뜻을 완결”해야 한다는 것도 같은 뜻이라 할 수 있다. ‘정한론’이나 후쿠자와의 ‘탈아론’도 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