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지앙붜웨이 (진먼대학 민난문화연구소(金門大學閩南文化研究所))

진먼은 타이완 해협의 서쪽, 민난 지우룽지앙커어우, 샤먼만 및 웨이터우만 밖에 위치해 있고 견고한 성벽처럼 해문을 굳건히 지키는 듯한 기세를 갖추고 있는 바 14세기 후반 이래로 해안 방어 전략 요지였다. 1949년부터 1992년까지 국공대치, 세계냉전구도의 전방기지가 되어감에 따라 사회와 공간은 고도로 군사화되었다. 이 논문은 근 20년 이래 진먼 지역에 관한 연구를 분석하고 그것이 인문사회와 타이완 역사 연구 영역에서 가지는 중요성을 논의하고자 한다. 우선, 초기 타이완 이민의 원적지 중 하나로서 진먼은 이주와 개간을 통한 사회적 변화를 기점으로 대항해 시대의 거점이 되는 변화를 겪었다. 명청 시기에 발간된 지방지와 편저작에서는 진먼의 주체성이 부각되었고, 국가와 지방의 대족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진먼이 남긴 무형, 유형의 문화재는 건축사, 종교 연구, 지방풍속 연구의 중요한 현장이 되었다. 두 번째, 근대 이래 진먼에서 경계를 넘어 유동하는 사회집단, 자본 및 문화 전파의 현상 그리고 교향 사회, 화교 가족 및 해외회관 연구 영역의 전개를 분석할 것이다. 세 번째는 1949년 이후 냉전으로서의 진먼, 즉 사회형태가 어떠한지 그리고 근대 역사 초기 ‘탈군사화’ 기록에 관해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먼의 지역연구와 지역사, 국족사, 세계사를 연결시켜 봄으로써 여러 학문 간 대화의 중요성 및 진먼 연구의 가능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근대 역사 초기(晚近) 20년, 타이완(臺灣) 연구는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문학, 민속연구 등 영역에서 성과를 이루었고 국내외 학계의 높은 관심을 얻었다. 그러나 1949년 이후 타이완의 실질적 영토는 타이완 섬, 펑후(澎湖), 진먼(金門), 마주(馬祖) 군도를 포함했다. 이 지역의 역사 경험, 사회조직, 경제구조, 언어습속 그리고 정치적 아이덴티티는 서로 달랐다. 타이완에서 포용성, 다원성의 정치경제 혹은 문화적인 공동체로서 진먼 및 ‘진먼학(Quemology)’은 하나의 개척해야 될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