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태진 (동국대학교 일본학과)

본인이 사학 전공이 아님에도, 도쿠가와 시기 전공자가 아님에도, 서평자로 추천 받게 된 것은 제대로 공부를 한 번 해보라는 의미와 함께, 잘 모르기 때문에 좀 더 전투적인 서평을 구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미로 ‘제멋대로’ 받아들였다. 아무도 읽지 않는 주례사 논평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모르더라도 도발적인 질문을 해 달라는 의미가 아닐까 혼자 생각했던 것이다.(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본인이 서평자가 된 것은 우연이었다.)

하지만 전공자가 아니라서, 특히나 막부 시기의 사상사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기 때문에 핀트를 못 맞추는 질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전문적인 논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시기 사상사를 재구성하고, 저자의 문제의식을 비판적으로 논할 지식은 본인에게는 없다. 더군다나 저자의 주요한 주장들과 비판은 이 책의 주제의식을 개략적으로 다루는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가 이미 출판되어, 이에 대한 서평 원고들(박삼헌,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일본학보』 106, 2016; 노관범, 「메이지의 바깥에서 보는 메이지 유신: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역사비평』, 2016; 이은경, 「어떻게 가능했을까 메이지유신은, 그리고 한일강제병합도」, 『일본역사연구』 45, 2017.)에서 다루어진 바가 있다. 또한 이 책에 대한 훌륭한 비평 역시 소개된 바(이새봄, 「동아시아의 ‘근대’와 메이지 유신의 위치: 『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역사비평』, 2020.) 있어 더 추가로 제기할 질문이 마땅하지 않다.

그렇게 한참 어떻게 서평을 쓸까 고민하는 와중에 이번 학기 대학원 수업에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를 한 학기 읽었던 점은 우연이었지만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마루야마 이후의 일본 사상사가 마루야마를 상대로 계승 내지 비판하고 있다는 점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물론 마루야마의 작업들은 이미 충분히 검토되어 일본사상사, 특히 도쿠가와 시기의 일본 사상사를 설명하는 데 시효가 끝나 버린, 일종의 폐기상태가 되어 버린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마루야마 마사오의 문제의식만은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 자신 역시 상대하고 있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입장에 서서 혹은 마루야마를 평론자로 놓고 이 둘 사이에 대리전을 벌이게 하는 것이 서평자가 지금 할 수 있는 최대의 논평일 것이라는 생각이, 잘만 성공한다면 재미있는 기획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