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철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거대한 사회변동에 관한 고전으로 자리잡은 월러스틴의 저작 『근대세계체제 I』의 부제는 “자본주의 농업과 16세기 유럽 세계-경제의 기원”이다. 이 부제에 주 목하면서 프리드먼은 근대 세계체계의 농업적 기원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Friedmann, 2000). 또한 자본주의 발전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본원적 축적의 사회경제적 과정은 농민이 토지로부터 쫓겨나서 가지게 되는 이중적 자유와 깊이 관련된다(Marx, 1967). 농업과 농민의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발전의 동학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대체로 공업, 노동계급, 기업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을 진행해 왔다.

자본주의 발전의 동학은, 세계적 분업구조의 측면에서 볼 때 지리적으로 비산업부문, 특히 농업과 농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져 왔다. 또한 농업의 산물인 식량은 자본주의 발생 초기부터 전 지구적인 교역상품으로 노동계급의 재생산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대상으로서의 먹거리(food)는 역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해 온 먹거리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것이다. 자본주의 발전의 궤적을 이해하고, 그 내부 동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식량이 어떻게 생산되며, 어떤 과정을 거쳐 교역이 이뤄지며, 노동자들은 무엇을 먹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누가 관리하고 통제하는지와 같은 질문은 매우 기본적이며 중요하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먹거리는 경제·사회적으로뿐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재구성되어 왔다.

식량체제론(Food Regime Perspective)은 이러한 분석적 공백을 메우고, 자본주의 헤게모니 사이클 속에서 먹거리 공급의 사회적·지리적 구성을 분석의 중심에 둔다(Friedmann, 2000). 식량 생산, 교역, 소비습관, 농지, 농민, 탈농과 같은 소재 들에 관심을 갖고, 역사적 분석을 시도한다. 역사적 분석은 공시적인 비교와 통 시적 비교를 통해 이론적 개념인 식량체제로 모아지고, 식량체제라는 렌즈는 다시 경험적·역사적 분석을 위해 도구로 활용된다. 소위 통합적 비교(incorporated comparison)를 통해 이론의 역사화와 역사의 이론화를 유연하게 진행하는 것이다(McMichael,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