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광근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2019년 월러스틴 사후 세계체계 분석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의 영면으로 인한 세계체계 분석의 현재와 미래의 불확실성에 관한 이 물음이 이 논문을 쓰기 시작한 직접적인 동기이다. 월러스틴이 떠난 지 1년 남짓 지난 오늘날 그의 지적 유산을 명시적으로 계승한 연구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경향은 무어 (Jason W. Moore)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세계생태(world-ecology) 연구다. 월러스틴이 몸담았던 빙햄턴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된 2013년부터 지금까지 무어는 활발한 저술 활동과 전방위적 논쟁으로 주목받고 있다. 게다가 그는 지적 동조자들을 규합하여 “세계생태 연구네트워크(World-Ecology Research Network)”1를 조직하여 세계생태 분석을 집합적 프로젝트로 성공적으로 전환하였다. 세계생태 분석을 제외하고는 오늘날의 세계체계 분석 혹은 세계역사 연구2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쟁점들을 논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이다.

오늘날 주목받는 그의 모습을 보면, 1970년대에 월러스틴이 거둔 성공과의 몇몇 유사성이 감지된다. 일단 세계생태 분석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활발한 개인적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무어는 한 해에만 대여섯 편의 논문을 한꺼번에 발표한 적도 있을 정도로 다작에 능한 학자다. 둘째, 그의 세계 생태 분석이 이제 더이상 그 자신만의 개인적 학문 프로젝트가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학자들이 협력하는 집합적 프로젝트로 성장하였다는 점이다. 2015년 출범한 “세계생태 연구네트워크”는 매년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인원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셋째,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저작들이 생태주의 진영 안팎에 걸쳐서 진지하고도 열띤 논쟁을 야기했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오늘날 무어는 1970년대의 젊은 월러스틴만큼이나 자신의 독특한 시각으로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그 시각을 집합적 프로젝트로 성장시켰고, 생태담론의 논쟁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애초의 질문을 다루기 위해서 그의 작업들을 살펴보는 작업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어는 브로델(Fernand Braudel), 아리기, 홉킨스(Terence Hopkins), 토미치(Dale Tomich), 맥마이클(Philip McMichael) 등 월러스틴과 함께 세계역사 분석 전통에 속하는 대표적 학자들뿐만 아니라, 포스터(John Bellamy Fos[1]ter), 버킷(Paul Burkett) 등의 생태 맑스주의, 하비(David Harvey)의 역사지리 유물론 등 다양한 전공에서 형성된 여러 조류들로부터 지적 자원들을 섭취하여 세계 생태 분석을 선보였다. 무어(2020: 62-63)는 세계생태 분석이 이론이 아니라 시각(perspective)이고, 과거와 현재의 인류의 다면적 경험들을 이론화하기 위한 분석틀(framework)이며, 생명의 그물, 인간, 비인간을 함께 엮어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방법(method)으로 제시한다. 최근에는 “세계생태 대화(conversation)”라는 표현을 새로이 쓰면서 서로 다른 입장간의 대화를 통해 이 분석을 확대재생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와 함께 세계생태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로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생생하게 경고한 클라인(2016)이나 누구보다 발빠르게 코로나19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을 출판한 말름(Malm, 2020) 같은 생태사회주의자들부터 포스트휴먼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해러웨이(Haraway, 2016) 등이 있다. 이처럼 그는 상당히 넓은 지적 스펙트럼의 학자들과 자본주의와 세계생태에 관한 진지한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