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강성용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최근 인도의 정치계, 특히 우파 국수주의 진영에 의해 대두된 힌두전통의 매개체이자 상징으로서의 쌍쓰끄리땀(sam. skr.tam, Sanskrit)에 대한 강조는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천민권익운동을 주도했고 간디(M. K. Gandhi)의 힌두 전통주의에 입각한 상징정치에 저항했던 암벧까르(B. R. Ambedkar)가 소환되는 일은 의외의 전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최근 인도의 역사전쟁에서는 암벧까르가 보수 힌두전통을 비판하기 위해 발표한 글들이 거꾸로 힌두 국수주의 진영의 역사 재구성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 맥락을 강화시키기 위해 암벧까르가 인도 고대사와 고전언어의 학문적인 권위자로 포장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시도가 필요했고 또 가능하게 된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인도의 현대 정치를 규정하는 요소로서 언어가 가지는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다. 같은 맥락 안에서 인도의 언어정책에 대한 독립시기의 정치적 입장들과 현재 다시 대두되고 있는 입장들은 표면적인 주장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와 맥락을 반영하여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나아가 암벧까르가 시도한 힌두전통의 비판을 위한 역사의 재구성이 도리어 힌두 국수주의 정당화 논리와 직결되고 있는 상황이 그 역사 재구성의 허구성에서 기인한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는 비판과 저항을 위해 창조된 역사적 허구가 원래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맥락에 놓이게 되는 상황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아닌 학문적 재검토를 제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본 논문은 암벧까르가 인도 현대정치에 재소환되는 맥락에 개입되는 세 층위의 허구들, 즉 암벧까르 자신이 구성한 인도 고대사의 허구와 암벧까르 자신에 관해 최근 구성된 허구 그리고 암벧까르가 정치적 전술로 선택한 허구를 재검토해서 이것들이 왜 허구인지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을 우선 과제로 한다. 그리고 그 허구성을 드러내는 서술이 동시에 그 정치적인 함축과 문제점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