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은 한국 근현대사와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는 섬이다. 이 섬은 아시아로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도모하던 ‘제국 일본’이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획득한 첫 번째 해외 식민지로서 한국과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공유한다. 또한 1945년 일본의 패망 이후 공산당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장제스(將介石)의 국민당정부가 타이완으로 패퇴한 이후, 냉전체제하에서 타이완은 한국과 함께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반공체제의 중요한 일원으로, 우리에게는 ‘자유중국’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국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밀월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92년 당시 노태우 정권의 소위 ‘북방외교’의 일환으로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공관 철수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타이완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고, 이 사태가 빚어낸파장은 현재까지도 타이완 사회에 미묘한 감정적 앙금으로 남아 있다.
한국과 타이완 사이의 외교적 긴장관계가 고조되던 1990년대 초반, 한국사회에 타이완 영화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허우샤오시엔(侯孝賢)의 <비정성시(悲情城市)>, 에드워드 양(楊德昌)의 <고령가소년살인사건(牯嶺街少年殺人事件)>과 같은영화가 그것이다. 1990년대 초 대만 뉴웨이브 영화 붐과 함께 소개된 이 두 편의 영화는 비록 소수의 매니아 층에 한정되긴 했지만 비평가들 사이에서 엄청난주목을 받았다. 역시 여기에는 냉전의 균열과 함께 도래한 ‘아시아’라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 이미지, 그리고 그 기억의 성좌의 한 중요한 지점으로 타이완이라는 장소성에 대한 ‘매혹’, 그리고 일제 식민지, 해방, 그리고 민간인 학살과군부독재, 그리고 민주화라는, 우리의 근현대사와 너무나 유사한 역사를 동시대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회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프로이트가 지적한 ‘두려운낯설음(Unheimlich)’이라는 감정이 깔려 있다. <비정성시(悲情城市)>의 무대 지우펀(九份)에서 내려다보이는 지룽(基隆) 반도의 음울한 잿빛 풍경이나, 고령가의 외성인 2세대 소년들의 무력감과 생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교차하는 표정과 몸짓은 90년대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에 빠져 있던 시네마 키드들에겐 잊을 수 없는 이미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1950~1960년대로부터도, 그리고 뉴웨이브의 물결을 타고 영화가 제작된 1980년대 후반의 시점에서 보더라도, 이미 한참의 세월이 흘러버린 현대 타이완 사회에서, 과거 영화 속의 이미지들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바다를 끼고 있는 한적한 외딴 어촌 마을이었던 지우펀은 타이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찾아온 수많은 관광객들로 이젠 발 디딜 틈도 없는 관광의 메카가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