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조명기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학계가 국가사(国家史) 같은 거대역사에 대한 편향된 관심에서 벗어나 지역사나 도시사, 개인사 같은 미시사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일이 아니다. 도시사나 지역사를 지역 내부자인 향토사학자의 전유물로만 간주하지 않고 거대역사의 획일성을 극복하거나 빈틈을 확인할 수 있는 돌파구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중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한국학계의 인식은 더욱 경직되어 있었는데, 문화대혁명과 천안문사태 등의 기억에 힘입은 탓인지 공산당 일당독재 혹은 전제주의로 전제하면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중국의 공간정치, 문화정책에 대한 관심은 거의 국가 층위에서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공간정치나 문화정책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 경우도 희귀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경우에조차도 중앙정치와 정책의 주도권을 절대화하면서 진행되다. 물론, 중국의 도시와 지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앙정치와 정책의 변화를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중앙정치의 결정권을 과도하게 인정하는 것은 현재 중국 도시들이 보여 주고 있는 인식적 변화를 경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학문적 장애로 인한 부정적 결과는 오롯이 한국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것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