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이 여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청되며 또 여느 때보다 더 큰 부담으로 많은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코로나 팬데믹 시국에서 이 책이 던지는 화두는 더 엄중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이 병과 고투하며 삶의 위기를 겪어 내는 순간들을 밀착하여 보여 주는 의료인류학 민족지를 읽기가 사실 쉬운 일은 아닌데, 독자로서 또 어떤 희망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더 절실해지는 것도 바로 그런 아픔과 고난의 세계로 함께 들어섬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제목에 있는 ‘돌봄 유도하기(eliciting care)’의 한 실천적인 시도로서도 읽혀진다. 우리는 저자가 이끄는 대로 병원의 침상으로, 신생아집중치료실의 인큐베이터로, 허물어져 가는 판잣집으로 인도되어 돌봄을 요하는 몸과 삶의 현존(presence)을 느낀다. 그리고 자문하게 된다. 우리 인간은 타자에 대한 돌봄의 필요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5쪽)?
저자의 박사논문 연구에 토대를 둔 이 책은 태국에서의 에이즈 감염인들의 의약품 접근권에 관한 석사 연구(2008)를 시작으로 오랜 기간 의료권 문제에 천착해 온 저자의 내공이 여실히 느껴지는 책이다. 2002년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태국에서 어떻게 돌봄이 도덕적이며 정치적인 의제와 실천으로서 재정립되어 가는지에 주목하여 2010년부터 18개월이 넘는 장기 현지조사를 거쳐 민족지로 엮어 냈다. 조사의 주 거점이 된 곳은 북부 치앙마이 시 외곽에 자리잡은 반팻(가명) 지구 공공병원으로서 도시와 지방, 그리고 태국과 미얀마의 경계에 위치해 여러모로 매개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다. 1980년대 후반 작은 보건소에 불과했던 곳이 전국민 의료보험 실시 이후 확장되기 시작해 현재는 11만 4,000 인구의 반팻 지구를 포괄하는 1차 의료기관으로서 60병상의 입원실, 외래환자 진료소, 치과, 정신과 상담실, 물리치료실, 응급실, 약국 등은 물론, 인근에서는 드물게 신생아집중치료실까지 갖춘 규모급 시설로 거듭났다. 사설병원의 치료비를 감당하기 힘든 가난한 주민들에서부터 무국적과 무보험 상태의 샨 이주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다양한 소외계층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이곳에서 저자는 병원의 의료진, 환자 및 그 가족들을 중심으로 보편적 의료권이라는 이상이 의술적이며 일상적인 돌봄의 실천으로 현실화되는 현장을 생생히 책에 담았다. 저자는 더 나아가 병원에 머물지 않고 환자들의 동선을 따라 마을로, 집으로 발을 옮기면서 이들이 일상의 공간에서 회복하거나 투병하며 삶을 가꾸어 나가는 과정 역시 섬세하게 기록했다. 이와 같은 총체적 접근으로 돌봄이 신체 및 의료 제도적인 차원을 넘어 정동적(affective)이며 영적인 차원까지 아우르는, 삶을 지탱하며 풍요롭게 하는 상호관계성들을 소환하는 과정임을 심도 있게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