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벽화란 무엇인가? 새삼 이렇게 자문하는 까닭은 우리가 쓰고 있는 고구려벽화라는 말에 여러 가지 개념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고구려인이 만든 벽화라는 의미가 있다. ‘고구려인의 벽화’라고 하겠다. 또 고구려라는 국가가 차지하고 있는 영역에서 발견되는 벽화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고구려에서의 벽화’다. 그런가 하면 고구려만의 아이덴티티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고구려만의 벽화’라고 부를 수 있겠다. 보통은 이 세 가지 의미를 섞어 사용해 왔다.
고구려인이 고구려라는 영역에서 그린 고구려 벽화가 어떠어떠한 화제로 구성되어 있고, 그 표현 기법은 이러이러 하다라고 설명하는 경우, 즉 ‘고구려인의 벽화’와 ‘고구려에서의 벽화’라는 개념에는 별 문제가 없다. 또 고구려인이 고구려에서 벽화를 제작했다면 고구려만의 아이덴티티가 충분히 담길 수밖에 없으므로 ‘고구려만의 벽화’를 추적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문제는 ‘고구려만의 벽화’의 경우, ‘고구려인의 벽화’나 ‘고구려에서의 벽화’와 달리 다른 지역 벽화와의 비교연구가 필요하다. 무덤 벽화가 고구려에서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에 널리 발견되는 것이므로, 고구려 벽화가 다른 지역과 어느 정도 유사성과 차별성을 갖고 있는지가 밝혀져야 비로소 진정한 고구려벽화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고구려만의 벽화’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고구려만의 벽화’를 추적하기 위한 기존의 비교연구에는 방법론적 문제점이 눈에 띈다. 비교를 할 때 비교의 주체와 대상이 동일한 차원에서 이루어졌는가라는 문제다. 비교는 동일한 조건하에서 이루어져야 그 의미가 살아난다. ‘고구려인의 벽화’이든 ‘고구려에서의 벽화’이든 ‘고구려만의 벽화’이든 고구려라고 함은 고대 왕조국가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비교의 대상도 마찬가지로 당시에 실재했던 왕조 국가를 단위로 해야 하지만, 고구려 벽화의 비교 대상은 종종 역사적 실체가 없는 ‘중국’의 벽화가 되곤 한다(전호태, 2007). 남북조 당시 하나의 ‘중국’은 없었다. 고구려가 존립하고 있을 때 중국 대륙에는 여러 왕조가 명멸했다. 위(魏)와 진(晉)에 이어서 북쪽에는 전진(前秦), 전연(前燕) 등과 같은 16국이, 그리고 북위에서 동위, 서위, 북제, 북주로 이어지는 북조의 여러 국가가 있었고, 남쪽에는 동진, 송, 제, 양, 진과 같은 남조의 여러 국가가 있었다. 또 중앙아시아에도 쿠차를 비롯해 여러 오아시스 국가가 존재했다. 고구려라는 왕조만의 벽화가 존재했다면, 전진의 벽화, 북제의 벽화와 같이 이들 왕조의 이름을 붙인 벽화가 상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기왕의 고구려 벽화 비교연구에서는 이렇게 중국 각 왕조국가의 벽화와 비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존재하지 않는 ‘중국’을 상정하고 그것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아마도 근대 국민국가가 투영된 역사학 방법론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비교 대상이 동일하지 않으면 정당한 비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