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정치·사회적 굴곡이 많았던 나라를 꼽으라고 하면 미얀마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010년도 총선에서 군부의 대리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연방발전단결당(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 USDP)이 대승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군부 독재 정권에서 준 민간 정부(Quasi-civilian government)로 정권 이양이 이루어졌고, 이후 2012년도 보궐선거에서는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이하 NLD)이 44석 중 43석을 차지하며 처음으로 의회에 입성하였다. 특히 2015년도 총선거에서는 NLD가 대승을 거두며 1962년 군부 쿠데타 이후 약 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 정부가 탄생하였다. 민간 정부 출범 5년 후 치러진 2020년도 총선에서 NLD는 많은 사람의 예상을 깨고 다시 한 번 대승을 거두며 민주화 과정을 공고히 하는 듯했다. 이렇게 지난 10년간 민주화 과정에 있어서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던 미얀마는 2021년 2월 1일 또다른 큰 변곡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땃마도(미얀마 군부)는 2월 1일 새벽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 고문(National Counsellor)인 아웅산 수지,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 선출된 국회의원,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구금하며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날은 지난 총선에서 선출된 의원들로 구성된 새 국회 소집을 하는 날이었다. 군사 쿠데타의 명분은 겉으로 보이기에는 간단명료했다. 지난 선거 이후 줄곧 제기되어 왔던 부정 선거 의혹에 NLD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땃마도는 NLD 정부와 연방선거위원회(Union Election Commission, UEC)가 많은 의혹들을 해소하지 못했으며, 이는 국가 단결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쿠데타 당일 땃마도는 2008년도 헌법 417조와 418조에 근거하여 향후 1년간 국가 비상사태(State of Emergency)를 선포하고 정권을 차지하였다. 정부 인사의 구금부터 국가 비상사태 선포, 군사 쿠데타의 정당화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은 마치 잘 짜놓은 각본이 있었던 것처럼 진행되었다. 물론 쿠데타 발발 다음 날부터 공공 보건 인력과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시민불복종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 CDM)과 크고 작은 반 군부정권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땃마도가 정권을 장악하고 국가행정평의회(State Administration Council, SAC) 설치를 공표할 때까지는 유혈 사태는 벌어지진 않았다. 한창 민주화가 진행 중이던 미얀마에 어떻게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었으며, 군부가 정권을 다시 장악할 수 있었던 근원적인 영향력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이 연구에서 미얀마의 민주화는 군부 정권이 주도한 민주화 과정이라고 가정하며, 후기 권위주의 체제하에 군부 정권은 정치 제도적(political institutions) 장치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제안한다. 본 연구는 이번 쿠데타의 직접적인 원인을 찾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으나, 민주화 과정에 있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 청산되지 못한 권위주의 유산이 어떻게 민주주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연구는 첫째, 1962년 군부 정권 수립 이후 약 60여 년이 넘는 기간동안 정권을 잡았던 군부 통치의 특징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한다. 둘째, 군부 주도의 민주화 과정이 어떻게 권위주의 주도의 민주화(authoritarian-led democratization)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지, 즉 군부 정권의 민주화에 대해서 분석하고자 한다. 셋째, 군부 통치의 특징과 군부 주도의 민주화에 대한 논의를 토대로 최근 군부 쿠데타를 바라보고자 한다.